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앞서 “나오는 숫자들이 매우 낯설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날 정부가 삼성, SK그룹과 함께 발표한 투자계획 규모는 전대미문의 숫자였다. 반도체, 피지컬 AI(인공지능),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정부는 호남 800조원(반도체 공장 4기 건설), 충청권 81조원(반도체 후공정 거점 육성), 전국 550조원(AI데이터센터 구축) 등 1500조원 투자계획을 밝혔다. 삼성과 SK는 이를 포함해 용인 등 수도권과 전국 단위 투자, 계열사 투자까지 합해 각각 2655조원과 2100조원의 장기 투자 청사진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 역사는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서사다. 경부고속도로 착공과 중화학공업 육성, 벤처 산업 활성화와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이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에 앞서 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금 우리가 기치를 세운 ‘AI 대전환’의 목표는 이 대통령이 말한 대로 대한민국의 향후 20~30년을 책임지는, 더 길게 보면 50년의 국운이 걸린 대역사다. 이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회장과 최태원 SK회장에게 국가영웅, 국민영웅이라며 허리숙여 인사한 이유다.
‘AI 코리아’ 대역사가 지난 정부의 녹색성장, 창조경제처럼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電水土人(전력·용수·토지·인력)’과 같은 핵심 인프라 구축이 선결과제다. 호남권 반도체 단지에만 전력 6.3GW(기가와트)와 하루 65만t의 용수가 필요하다. 1.4GW급 신규 원전 4~5기 설비 용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호남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지만 기후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간헐성’을 극복해야 한다. 반도체 공정 필수 요소인 ‘초순수(超純水)’를 확보하는 것도 숙제다. 섬진강과 영산강은 절대 수량 자체가 적고, 영산강은 수질마저 하위권이다. 반도체 남방한계선을 넘어 인재를 구하려면 교육, 문화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가뭄에도 TSMC에 용수를 우선 공급하는 대만이나 정부가 나서 국가 전략산업에 전력 등 자원을 적극 공급하는 중국처럼 과감하고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난제들이다.
AI 대전환은 다음 정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현 정부 당대에서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은 금물이다. 기업이 사업적 합리성과 투자환경 변화에 근거해 투자의 양과 속도를 자율 결정하도록 ‘투자 유연화’도 병행돼야 한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혁신역량을 극대화하도록 장애물을 치워주는 페이스메이커가 돼야 한다.
mhj@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