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간 많이 봐왔던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에요.” 드라마 제작발표회 현장의 단골 멘트다. 정작 뚜껑을 열면,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배신 당한다. 역시나 ‘전형적’이다.
배우 공효진은 대한민국 연예계의 대표 ‘로코퀸’이다. 수편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를 흥행시키며 ‘공블리’(공효진 +러블리)로 불리게 됐다. 공효진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로맨틱코미디 속 여주인공 변천사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로코’가 그리는 공효진을 비롯한 여주인공 캐릭터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매력을 지녔다. 하루 하루 벌이가 급급한 생계형 캐릭터로 때로는 처연하고 때로는 애틋하다. 로코 속 여주인공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약간의 변화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했지만, 큰 틀에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방송 중인 ‘질투의 여신’(SBS)에서 공효진이 연기하는 기상캐스터 표나리 역시 비정규직의 생계형 여주인공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은 대대로 재벌이었다. 방송 중인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tvN) 역시 생계형 흙수저 여주인공(박소담)의 곁에 돈이라면 차고 넘치는 재벌남들이 등장한다. 구닥다리 캐릭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굳이 재벌이 아니라도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트라우마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안은 경우도 있다. 여성 시청자의 모성애를 건드리기좋은 장치다. 로코 속 남자주인고은 시청층을 겨냥해 이들이 지향하는 외적 요소를 담은 인물들로 서서히 변화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대가 변하며 캐릭터도 조금씩 달라졌다”며 “과거 남자주인공은 돈만 있으면 됐지만 이제는 돈에 더해 전문적인 직업, 매력적인 성격까지 생겨났다. 거기에 인성도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현재 여성 시청자들이 원하는 남성상의 모습을 담아가기 때문”(정덕현 평론가)이다.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왔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판타지를 줄 수 있는 캐릭터”(정덕현 평론가)여야 한다. 이는 큰 틀의 ‘왕자님’의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소비층이 분명하기에 드라마 캐릭터는 장구한 시간을 거쳐 조금씩 변화하면서도 한결같이 ‘전형성’을 확보해왔다. TV라는 매체의 속성 때문이다.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국장은 “흔히 드라마는 린백(Lean-Back), 영화는 린포워드(Lean-Forward)라고 하는데, 드라마는 소파에 몸을 기대 편하게 볼 수 있어야 하고, 영화는 돈을 내고 선택한 매체이니 무엇 하나라도 얻어가려는 속성이 강하다”며 “두 매체의 차이가 장르, 캐릭터, 스토리를 달리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TV는 남녀노소가 둘러앉아 편하게 보는 매체이기 때문에 “드라마 캐릭터나 소재는 조금이라도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면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게”(박상주 국장)된다. 박상주 국장은 이같은 이유로 “모든 시청층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는 세대별로 공감할 캐릭터가 필요하다”면서 “전향적인 캐릭터가 너무 많으면 도리어 부담스럽고 어색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장르물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나 전 계층에 소구하고 있진 않다. 올해 인기리에 방송된 ‘시그널’(tvN) 역시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스토리와 캐릭터의 구성으로 젊은 세대에게 높은 인기를 모았으나 전 세대를 아우르진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그널’의 경우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이었으나 집중해서 봐야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드라마다. 대다수 드라마 시청층으로 꼽히는 4050 세대는 소화하지 못했다”면서 “이들 세대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힐끗힐끗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원하는 세대다”라고 말했다.
많은 드라마들이 뻔하고 식상하다는 질타를 받으면서도 매작품마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드라마는 전형성을 가져가야 낯설지 않다. 무조건 새롭기만 하면 시청자가 납득하지 못 한다”며 “전형적인 캐릭터가 배치돼 있어야 이해가 쉽고, 이들 캐릭터로 인해 입체적인 다른 캐릭터가 돋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많은 드라마에선 적재적소에 익히 보왔던 캐릭터를 적재적소에서 활용한다. 주말드라마엔 고약한 재벌가 사모님이 등장해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가로 막고, 퓨전 사극엔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으려는 비운의 왕세자(KBS2 ‘구르미 그린 달빛’,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들이 등장한다. 남장여자(구르미 그린 달빛)도 빠지지 않는다. 완강한 재벌 회장님과 유산상속을 위해 다툼을 벌이는 형제들(MBC ‘몬스터’) 역시 전형성을 띈 캐릭터다. 오로지 일에만 매진하는 냉철한 커리어우먼(tvN ‘굿와이프’)도 드라마 속 단골 캐릭터다.
현재 로코에서 가장 전형성을 띈 여주인공은 여성 시청자들로 하여금 “심정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캐릭터”(정덕현 평론가)다. “자기 일을 가지고 있지만 직장인이라는 을의 입장에 놓여있고, 찌질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 밝고 건강한 캐릭터”라야 안성맞춤이다. 올해 인기를 모은 ‘또 오해영’의 여주인공 서현진 역시 평범한 30대 직장여성, 대단한 스펙은 없지만 비교 당하기 일쑤인 현실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여성 시청자들의 ‘내가 오해영’이라는 ‘커밍아웃’이 뒤따랐다. 드라마는 “트렌드의 가장 최전선에 있기에, 이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해야 성공확률이 높다.
사실 이들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가적이다. 호감과 비호감 사이를 극명하게 오간다. “시청자의 감정을 대변해줘서 공감대를 높이는가 하면, 그간 숱하게 봐온 캐릭터를 또 봐야 한다는 식상함”(정덕현 평론가)이 따라온다.
정덕현 평론가는 때문에 “드라마는 새로움과 익숙함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며 “전형적인 캐릭터를 가져온다 해도 기존에 봐온 캐릭터에 해당 작품만의 고유한 색깔을 입혀야 호감이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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