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의 하청 노동조합이 2017년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서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의 교섭 의무를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 시행 이후 사건에서는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 기업을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봉법 체계에서 사용자 개념이 확장된 만큼 유사한 분쟁이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노봉법이 당초 취지와 달리 산업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기능을 하지 않도록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할 때다.
대법원은 “구(옛) 노동조합법 제2조가 적용되는 사안에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관한 종전 법리는 타당하다”고 밝혔다. 옛 노조법의 경우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면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법리는 부당 노동행위 사건에 한정되고, 단체교섭 의무까지 확대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로써 노봉법 소급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일단락됐다.
사법부가 과거 사안에 대해서는 원청의 교섭 의무가 없음을 명확히 하면서 해묵은 법적 리스크를 해소해 줬지만, 지난 3월 노봉법 시행 이후 전개될 양상은 이전과는 판이할 것이라고 예고한 점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내달 1일 울산지방노동위원회가 현대자동차에 대한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한다.교섭을 요구한 하청 노조 조합원은 1675명으로 울산·아산·전주공장의 구내식당, 보안업체, 차량 판매 대리점에서 조리, 경비, 영업을 하고 있는 인력들이 주축을 이룬다. 경영계는 울산 지노위의 판단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각 지역 노동위에서 현대제철, 포스코이앤씨, 삼성물산 등을 대상으로 잇따라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려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N% 성과급’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도 우려스럽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 협상에서 전 종업원은 물론 협력업체 직원들에도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창사 후 첫 파업에 나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영업이익의 20%, 카카오는 최대 15%를 달라고 한다. 노봉법 시행으로 하청 노조들도 원청과 같은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전자에서 보듯 사내 노조와의 교섭도 피가 마르는데, 수많은 하청 노조와 별도의 협상을 해야 하고 결렬시 소송전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정상적 경영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규제의 역설’을 야기하는 노봉법의 부작용을 살펴 보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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