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의 산골에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농부의 손길도 분주해져 4월 초에는 씨감자를 묻고 옥수수 씨앗도 일부 파종했다. 고추 수박 오이 토마토 등 대부분의 작물은 5월 초순께 모종을 심는다. 그 전에 부지런히 두둑을 고르고 일부는 비닐 씌우는 작업을 마쳐야 한다. 전원의 봄은 언제나 희망으로 시작된다.

요즘 필자는 농사일 틈틈이 집과 농장(5,785㎡, 1750평)을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2010년 귀농 후 애초 산자락 경사지를 그대로 살려 위쪽은 과수와 솔밭, 아래쪽은 작물 밭을 조성했다. 중장비를 동원해 억지로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운 곡선은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하고 평온하다. 또‘자그로(자연 그대로) 농사’를 지향하며 큰 농기계 대신 삽과 괭이로 직접 일군 올망졸망한 밭에는 옛 시골의 정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농촌을 감싸고 있는 자연은 본래 곡선이다. 산과 들, 물길 어디에도 직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의 삶과 농업은 효율과 성과를 좇으며 직선을 고집해 왔다. 직선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만큼 마음은 쉽게 지친다. 반대로 곡선의 자연은 느림과 여유, 그리고 치유를 선물한다. 필자가 ‘진정한 치유농업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어야 한다’라고 믿는 이유다.

초봄의 농장은 자연의 생명력과 곡선의 미학이 가장 도드라지는 공간이다. 농장 맨 위쪽의 완만하게 펼쳐진 솔숲을 걷다 보면 떨어진 갈색 솔잎 사이로 파릇한 기운을 내뿜는 산마늘을 만난다. 조금 내려가 약간 그늘진 곳에선 참당귀가 줄기를 부쩍 올리고 있고, 두릅도 곧 새순을 틔울 기세다.

따스한 봄볕 아래, 아내는 매일 밭길을 맨발로 걷는 ‘접지(earthing)’를 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농장의 개들도 제각기 봄을 맞는다. 나이 들어 노쇠한 ‘방통이’는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담담하게 먼 산을 바라본다. 반면 어린 ‘챠코’는 와이어 줄에 매여있으면서도 ‘봄 친구’와 신나게 뛰논다. 봄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듯 나이에 따라 다르다.

어느덧 우리 부부도 올해로 ‘예순 고개’를 넘었다. 40대 중후반 귀농 초기에 봄을 맞던 ‘설렘’은 이젠 ‘감사’로 바뀌었다. 흔히 백세시대를 말하지만, 질병 없이 사는 건강수명은 평균 70세 안팎이라 하지 않던가. 전원의 봄은 매년 돌아오지만,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은 유한하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전원생활을 흔히‘로망’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사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소득을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농촌엔 늘 변함없이 의연한 자연이 있다. 느림과 여유, 그리고 치유는 이 자연에 순응하고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은퇴 후 시골행을 꿈꾼다면 귀농보다는 귀촌을 권하고 싶다. 만약 귀농하더라도 대농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자.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우선하는 ‘작은 치유농사’부터 시작해 보길 바란다. 도시의 직선적 삶을 고수한 채 무리하게 일하다 되레 건강을 해치는 안타까운 사례를 자주 보아왔다. 자연이 제시하는 곡선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을 때, 시골살이는 비로소 느림의 미학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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