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국내 3위 에틸렌 생산 업체 여천NCC(나프타 분해 시설)가 일단 급한 불을 끄게 됐다. 추가 자금지원 여부를 두고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던 DL그룹이 입장을 선회해 DL케미칼에 대한 자금지원(유상증자 방식 1778억원)을 결정하면서다. 여천NCC는 이번 부도설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3월에도 한화와 DL에서 총 2000억원을 지원 받았다. 그런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3000억원을 더 요청했다. 자금지원이 최종 확정되면 앞서 한화 지원금(1500억원)을 더해 올들어 8개월 사이에 5000억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업계에선 향후에도 추가로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쟁력을 상실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자금 지원에 기대 연명하는 셈이다. 여천NCC의 처지에는 중국발 충격파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한국 경제의 상황이 압축돼 있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공동 출자해 각 회사의 나프타 분해시설을 통합한 회사다. 2017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기세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그로부터 8년 만에 부도설에 시달리는 상황이 됐다. 여천NCC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될까 재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화·DL뿐만 아니라 LG·SK·롯데·HD현대·효성 등 국내 대표 대기업들이 석유화학 계열사를 두고 있고, 모두 중국발 저가 공세에 휘청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그룹 ‘위기설’도 롯데케미칼의 조 단위 적자에서 비롯됐다.

석유화학 불황은 ‘차이나 쇼크’가 한국 제조업에 얼마나 큰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지 보여준다. 석유화학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이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돌변하자 위기가 닥쳤다. 중동 에너지 기업들마저 대규모 자본을 앞세워 원유에서 바로 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술 투자에 나서면서 ‘저가 밀어내기’ 경쟁이 시장을 지배했다. 중국산은 한국산보다 15~20% 싸고, 중동산가격은 한국산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석유화학 산업은 작년 수출액만 약 480억달러(약 66조6000억원)로 반도체, 자동차, 일반 기계에 이어 4위였다. 전후방 고용 유발 인원만 약 40만명에 달한다. 대기업 계열사 한두 곳이 공장을 멈추거나 부도가 날 경우, 협력사 수십 곳이 줄줄이 영향을 받으며 지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기간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빠졌는데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기의 본질이 중국발 공급 과잉이라는 점에서 개별 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외환위기 때 산업 구조조정 수준의 고강도 대책으로 위기 타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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