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들이 본 관세협상 결과
3500억달러 투자, 경제규모 비해 상당 수준
투자부분 융통성 여지 커…겁먹을 필요 없어
상호관세 유예기간 종료를 하루 앞둔 31일 한미 간 극적으로 타결된 관세 협상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통상 전문가들은 “민감 품목인 농산물을 방어한 점은 긍정적”이라고 보면서도 “자동차 관세 인하 폭과 대미 투자 조건 등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대체로 평가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농산물은 금액 기준으로 보면 작지만 국내에서는 민감도가 매우 높은 품목”이라며 “소고기 수입 조건 완화나 쌀 시장의 전면 개방이 없었던 점은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한 개방 요구 속에서도 통상 당국의 설득이 통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을 풀면 미국이 역풍을 맞고, 캐나다·호주산이 득세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안보실장도 “통상당국 간 협의에서 미국 역시 소고기 월령 30개월 규제를 풀면 급격한 소비 감소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쌀 시장 개방에 대한 우려도 결국은 미국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우리 수출의 핵심 품목인 자동차의 품목별 관세가 미국 측의 요구대로 15%로 조정된 점은 ‘뼈아픈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자동차 관세의 경우 한국은 마지막까지 12.5%가 맞다고 주장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했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기보 교수는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기존 자동차 관세는 0%였고, 일본은 2.5%였다”며 “협상 결과 한·일이 같은 조건이 됐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손해가 발생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들이 체결한 협정을 스스로 부정하면서도 힘의 논리로 관철시킨 것은 국제 통상 질서 측면에서도 부적절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종덕 실장은 “우리는 일본이 기존 2.5% 관세에서 12.5%포인트 올렸다는 점을 참고해 이에 맞춘 협상전략을 펼쳤지만 미국은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는 1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업 협력펀드와 2000억 달러의 반도체·원전·이차전지·바이오 투자펀드를 합한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규모가 국내 경제 규모에 비춰보면 다소 과도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3500억 달러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19%에 달하는 수준”이라며 “일본의 투자 규모는 GDP의 14%, 유럽연합(EU)은 3%였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 삼성, SK 등 기존 투자까지 포함하면 2000억 달러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기보 교수는 “1500억 달러가 배정된 조선업은 특별히 지정되지 않은 산업군보다는 더 진전된 내용이 나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면서 “다만, 투자 부분은 융통성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관세 협정의 실제 이행 과정에서 세부 조건, 이익 배분 구조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표면적 숫자보다도 구조적 유불리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영경·이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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