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4일부터 ‘창덕궁 약다방’ 운영

조선 궁궐 약방에서 즐기는 다과·한방차

내달 4일부터 창덕궁 약방에서 ‘창덕궁 약다방’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정아 기자
내달 4일부터 창덕궁 약방에서 ‘창덕궁 약다방’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느린 중모리 장단의 가야금 산조가 귓가에 머무는 창덕궁 약방. 따사로운 햇살이 처마 끝에 내려앉은 이곳에서 12일 ‘창덕궁 약다방’ 사전 리허설이 열렸다. 연둣빛 잎새 사이로 불어온 봄바람이 뺨을 스치며 지나갔고, 따뜻한 찻물에 피어오른 한방차 향이 공간을 고요히 감쌌다. 참가자들은 정갈하게 차려진 다과상 앞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찻물 너머로 비치는 궁궐은 마치 숨을 고르며 흐르는 시간 속에 잠긴 듯 평온했다.

내달부터 누구나 참여 가능한 창덕궁 약다방은 단순한 다과 체험이 아니다. 궁궐 내 관원들의 업무 공간이었던 궐내각사 중 한 곳인 약방에서,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철학을 담아 몸을 보하고 마음을 달래는 조선 궁중의 지혜를 전한다. 참가자들은 여섯 가지 전통 다과와 한방차가 포함된 ‘궁중 다과 묶음’을 고르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궁중 다과 묶음 ‘호박란 세트’. 이정아 기자
궁중 다과 묶음 ‘호박란 세트’. 이정아 기자

궁중 다과 묶음은 ‘호박란 세트’와 ‘배란 세트’로 나뉜다. 삶거나 찐 호박을 으깨 곱게 빚은 ‘호박란’, 투명하게 조려낸 배를 다시 빚어낸 ‘배란’, 바삭한 연근 부각과 꽃무늬 다식, 전통 약과, 대추초·밤초, 호두나 금귤 정과가 작은 옻칠 다과함 안에 단정히 담겼다.

곁들이는 약차는 생강과 대추가 들어간 ‘궁온차’, 인삼과 구기자가 어우러진 ‘장생차’, 박하와 계피로 만든 ‘청온차’, 그리고 자줏빛 영롱한 ‘오미자차’까지 네 가지가 준비돼 있다. “조선의 임금도 답답한 속을 달래고자 할 때면 오미자차를 찾으셨사옵니다.” “몸에 기운을 북돋아 활력을 얻고 싶으면 장생차를 권해 드리옵나이다.” 조선 약방나인의 의복을 갖춰 입은 진행자가 궁중 궁녀처럼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건넸고, 참가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찻잔에 시선을 모았다.

박형민 매듭장 이수자. 이정아 기자
박형민 매듭장 이수자. 이정아 기자
권영진, 남진우 칠장 이수자. 이정아 기자
권영진, 남진우 칠장 이수자. 이정아 기자

각자의 한 상 위에는 정성스럽게 손수 제작된 옻칠 다과함, 찻잔 받침, 차패 매듭, 다과 꽂이 등 공예품들도 가지런히 놓였다. 모두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로 체험 프로그램의 품격을 한층 높인 것. 이처럼 올해는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무형유산 전승취약종목 활성화 지원사업’을 연계해 의미를 더했다. 궁궐을 무대로 현대인의 실생활에서 멀어졌던 전통 기술의 쓰임새를 되살리고자 마련한 자리다.

박형민 매듭장 이수자는 한방차 색에 어우러지는 국화·매화·잠자리 매듭을 만들어 차패에 달았다. 권영진, 남진우 칠장 이수자는 소나무에 삼베를 발라 수십 번의 거듭된 옻칠로 70여 개의 다과함을 제작했다. 권 이수자는 “옻칠을 하면 각종 세균과 벌레를 막아준다”며 “예로부터 조상들은 옻칠의 우수함을 생활에 접목해 지혜롭게 사용했다”고 전했다. 차경(借景·빌려오는 풍경)을 통해 자연을 훔친 약방 내부에는 박문열 두석장 보유자가 만든 조선 목가구인 반닫이가 단아하게 놓여 옛 운치를 더했다.

창덕궁 약다방은 내달 4일부터 26일까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세 차례 운영된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만 참여할 수 있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부터는 일반 관람객도 신청할 수 있다. 회당 30명씩 사전 예약제로 진행되며, 70여 분 동안 궁중 다과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다. 참가자 모집은 추첨제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1인당 1만5000원.

추첨 응모는 티켓링크에서 18일 오후 2시까지 가능하다. 28일 오후 2시부터는 만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에 한해 선착순 전화 예매도 가능하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