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상대 관세전쟁 밀어부치다 역풍

美中 ‘극단대치’…달러·국채 패권 위협에 ‘숨고르기’

우크라·가자전쟁, 한달내 종식 공약도 공염불

동맹국에 방위비 요구하며 관계 파기

세계최강국 ‘책임’ 외면해 국제사회 대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야외에서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EP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야외에서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오는 29일(현지시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복귀 및 취임 100일을 맞는 날이다. 2017년 1월 20일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에 자리를 물려줬고, 8년 후인 2025년 1월 20일 제47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화려하게 재입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복귀 100일 동안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선거 구호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앞세워 ‘미국 우선주의’라는 시대정신을 열성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의 기존 전통이나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풍부한 재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 공화당의 대선후보 자리까지 꿰찬 만큼 그의 정치 행보는 연일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는 요란했지만, 지금까지 그가 말한대로 이뤄진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관세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겠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지만, 그가 세계를 상대로 일으킨 ‘관세전쟁’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뿐, 미국 경제가 나아질 조짐은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오는 30일 발표되는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 상승(연율 기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 확정치 2.4%에 비해 급격하게 꺾인 수치다. 초강경 태세로 밀어붙인 관세정책은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국제 자유무역 질서를 근간부터 뒤흔들고 있다.

후보 시절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즉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공언했지만, 취임 100일이 될 동안 양 전쟁 모두 전쟁 종전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합병, 캐나다의 51번째 주 편입, 파나마 운하 운영권 탈환 등 오늘날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그의 온갖 도발적 공약 또한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파리협약 탈퇴, 러시아 편향적 우크라이나전 중재 외교, 한국과 일본, EU(유럽연합) 등 동맹국과 우방국에 방위비와 관세 폭탄 부가 등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리더로서 미국이 맡아왔던 공공재적 역할은 갈수록 멀리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최강의 슈퍼파워로서 책임과 의무는 무시하고 권리만 행사하려는 태도에 전 세계의 경멸과 비웃음의 대상마저 되고 있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에 ‘반이스라엘주의 타파’를 요구하며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끊고, 일부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수사하고 비자를 취소하는 등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와 ‘개방성’과 거리가 먼 행보에 트럼프발(發) 문화전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를 맞아 자리로 안내하고 있다. [A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를 맞아 자리로 안내하고 있다. [AP]

‘탈이념’ 미국 우선주의 외교로 각종 논란

외교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0일간 ‘이념’에서 벗어나 최대한도의 실익 추구에 골몰, 수십년간 쌓아온 동맹과의 결속력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유럽과의 연계를 강화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던 기존 대통령들의 노선에서 탈피한 우크라이나전 관련 외교가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전쟁을 도발한 러시아에 대한 압박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을 더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중재안은 우크라이나가 현재 러시아에 점령된 지역에 대한 권한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 형성된 ‘영토 불가침’이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지난 2월 24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3년을 맞아 유엔 총회에 상정된 결의안에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묻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결의안에 미국은 러시아, 북한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또 그로부터 나흘 뒤인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몰아세운 뒤 회담 일정을 중단하고 사실상 그를 쫓아냈는데 이 장면은 트럼프식 외교를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JD 밴스 미 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그린란드를 직접 방문해 현지를 둘러보고 잇다. [AFP]
JD 밴스 미 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그린란드를 직접 방문해 현지를 둘러보고 잇다. [AFP]

비슷한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영토 확장 야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미국 통제 하에 두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등 다양한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맹방’ 캐나다를 ‘미국의 제51번째주로 편입하겠다’고 선언해 양국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현장인 가자지구에 대해 기존 거주자들을 인근의 다른 나라로 전부 이주시키고 미국이 관리권을 얻어 프랑스의 남부의 고급 휴양지 라비에라처럼 개발하겠다고 밝혀 ‘확장주의’ 논란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대외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를 대폭 축소하는 등 전세계를 상대로 한 공공재 역할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다만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는 현재까지 전통적 외교 문법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유일한 경쟁 상대로 지목한 중국 견제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로 풀이된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 분야 핵심 인사들은 한국을 포함한 한미일 3자 안보협력 등을 중시하는 발언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인 지난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인 지난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AFP]

‘관세전쟁’으로 전 세계에 충격파…동맹·FTA도 모두 무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영역으로는 대외 이슈로는 관세전쟁, 국내 이슈로는 불법이민자 단속이 꼽힌다.

관세를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규정하며 대대적 추진을 공약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이후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대한 각 25%의 품목별 관세와 전세계 대부분 국가를 상대로 한 보편 관세 성격의 10% 기본관세를 도입했다.

그리고 지난 9일 한국을 포함한 57개 경제주체(56개국+유럽연합)에 차등 적용되는 ‘상호관세’를 발효했다가 13시간 만에 유예했지만, 중국과는 누적 100%가 넘는 초고율 관세(미국의 대중 관세 145%, 중국의 대미 관세 125%)를 서로 주고받기식으로 부과하며 ‘치킨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관세를 통해 미국의 세수를 확장하고, 무역적자를 줄이는 한편 미국내 제조업 기반의 부활을 꾀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복안이다.

집권 1기 때 일부 참모들의 반대 속에 머뭇거리다 관세를 충분히 도입하지 못했던 데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그는 폭풍처럼 새로운 관세정책을 발표했다.

한국과 같은 동맹국이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도 예외가 없는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그동안 미국 주도로 추진해온 자유무역시스템과 국제 분업체계를 흔들 파급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 같은 동맹국들과 안보 협력뿐 아니라 무역·경제 협력까지 심화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을 다져온 미국의 종전 대외정책 흐름에도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FP]

국내 진보세력과도 맞짱…하버드대 등 대학가와 전쟁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이른바 미국 진보세력과의 ‘문화전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소수계층과 약자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과 성소수자 권익옹호 정책을 대거 폐기했고, 트렌스젠더 군인의 복무를 사실상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또 반유대주의 방치 등을 문제 삼으며 미 주요 명문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등에 정부 보조금 지원 중단을 압박해 대학의 자율권 침해 논란을 불렀다.

특히 미국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하버드대가 대학 인사권에 대한 정부 개입을 보장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반기를 들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미 대학사회 전체로 파열음이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가하거나 관련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외국인 학생들의 비자를 수백건 취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헌법에도 배치되는 일을 미 정부가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날선 정책 추진으로 미국 사회는 트럼프 지지층과 비지지층, 보수층과 진보층을 중심으로 급격히 분열되고 있다.

과거 민주당 정부 시절 ‘정치적 올바름’(PC)에 교조적으로 충실했던 일부 진보주의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평가도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나오지만 미국이 중시해온 자유와 개방의 가치에 반한다는 근원적 비판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또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혁신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메스’를 맡긴 연방정부 구조조정은 필요성에 대한 일정한 공감대가 있었음에도 속도와 강도의 ‘과격함’이 논란을 유발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과정에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해외 권위주의 정권을 압박해온 기구들이 해체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하버드대 학생인 바이올렛 배런이 친팔레스타인 운동가들과 함께 지난 25일(현지시간)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의견을 펼치고 있다. [AFP]
하버드대 학생인 바이올렛 배런이 친팔레스타인 운동가들과 함께 지난 25일(현지시간)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의견을 펼치고 있다. [AFP]

취임 100일 만에 전국서 반 트럼프 시위…내년 11월 중간선거 주목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 행보는 이번이 2번째 임기로서 4년이라는 시간 안에 결과를 내려면 취임 초반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 4건의 형사 기소와 암살 위기를 돌파하며 대선에서 승리한 데 따른 자신감 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한 의회는 여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했고, 연방 대법원 역시 6대3으로 보수 성향 판사가 진보성향 판사를 압도하는 구도여서 출범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믿고 과도한 자신감으로 폭주하게 된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아울러 내각과 백악관 주요 보직에 철저히 충성파를 기용함으로써 정부 안에서 견제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도 백악관이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런 기류가 장기간 지속될 거라는 보장은 없는 상태다.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이달 5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이례적으로 전국적으로 반 트럼프 시위가 벌어진 바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외국인 추방과 관련해 절차적 문제, VOA와 RFA 해체 등을 둘러싼 소송에서 트럼프의 의도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관세 정책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등 그의 정책에 반감을 가지는 유권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한 지 수일만에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 역시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스스로도 관세 역풍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트럼프 진영에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지난 16∼21일 미국 성인 4306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오차범위 ±2% 포인트) 결과 응답자의 37%만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운용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집권 1기(2017∼2021년)를 포함해 최저치였다.

트럼프의 최신 국정수행 지지도는 42%로 집권 2기 출범 이래 가장 낮았다.

내년 11월 연방의회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등을 뽑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어 트럼프의 ‘마가’가 지속적으로 울려퍼질지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