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4인 메시지로 돌아본 계엄後 122일
“감성에 치우친 사회, 내편 아니면 악마화”
“쪼개진 한국…통합은 ‘다름’ 받아들여야”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심리적 내전 상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단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체감한 사회갈등 정도가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연구 결과(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나왔다.
국론이 분열되고 진영이 갈라진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4일 헤럴드경제는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박일환 전 대법관,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염재호 태재대 총장(가나다순) 등 총 4명의 석학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석학들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양분된 사회의 모습에 대해 각자의 소회를 밝히면서 한국이 ‘초갈등사회’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지금의 한국을 이성과 상식이 아닌 ‘감성’에 치우친 사회로 보았으며, “내편은 신성화하는 반면, 나와 다른 편은 완전히 악마화하는 현상은 마치 프리미어 리그에서 훌리건들이 난동을 피우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박일환 전 대법관도 “우리가 살다보면 내가 주장한 것이 틀린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걸 생각하지 않고 나와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과격한 행동을 보이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송호근 교수는 “12월 3일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무너졌다”고 판단했다. 송 교수는 “민주주의는 열린 공간이어야 하며, 그 공간엔 계몽이나 양심 등이 채워져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데 지금은 열린 공간에 비방과 음해, 왜곡 등이 들어찼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은 현 상황을 ‘단순한 분열’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장은 “보수 진영에서는 ‘내전’이란 표현까지 썼는데, 실질적으로 국민 심리도 그런 상태일 수 있다”면서 “계엄 사태는 몇시간 만에 일단 끝이 났지만 국론 분열은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문제가 크다”라고 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진 원인으로 숙의 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시민의 태도와 포용력이 부족한 정치 리더들의 자세를 꼽았다. 송 교수는 시민들이 의무와 책임을 논하기도 전에 권리 투쟁에 혈안이 돼 있다고 했다. 그는 “광장에 나가서 소리치는 ‘권리’를 챙기기 이전에 의무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를 거칠 줄 아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봤다. 그는 “사회 지도층들이 너무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행동해 갈등이 심화됐다”면서 “선출된 권력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를 할 땐 그것에 뒤따르는 책임이 있음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석학들은 언론의 보도 방식을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김 전 총장은 “언론이 탄핵 소추 대상자의 메시지를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면서 “판단이 어려울수록 국민은 언론에 의존하는데, 그런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옳고 그름의 경계조차 사라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엄 총장 역시 정제되지 않은 주장과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유튜브 공간에서 활개를 친 것도 ‘제도권 언론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라고 설명했다. 어느 때보다 양 진영 간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이지만 석학들 중에는 ‘그럼에도’ 희망적인 부분을 찾아냈다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시민 사회 내에 무력 충돌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전 총장은 “탄핵 찬반 집회가 광화문과 안국역 등에서 동시에 열렸지만 직접적·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염 총장은 “심각한 마찰이나 크게 우려할 만한 충돌 사태까지 번지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했으며, 박 전 대법관은 “사망자가 나왔던 미국 의회 난입 사태 등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그래도 선진화된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일부는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경제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정경분리 원칙이 지켜진 점을 긍정적 요인으로 봤다.
송 교수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당사자(정치 리더)들이 정권을 두고 계속 격돌하고 투쟁하는 모습은 절망적이었다”면서도 “그나마 경제가 정치와 분리돼 운영되고 있는 건 상당히 다행이다”라고 언급했다.
석학들은 한국이 분열된 사회가 아닌 통합된 사회로 나아가려면 먼저 과거에 대한 냉철한 반성부터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탄핵 정국을 ‘급류’에 빗대어 표현한 송 교수는 “우리가 생명을 걸고서 급류에 징검다리를 놓고 건널 땐 왜 급류가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고민을 한 뒤에 우리 각자가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그래야 급류를 제대로 건널 수 있게 되고, 권리 주장에 앞서 ‘자제’를 할 수 있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염 총장은 한 걸음 물러서서 사태를 냉정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염 총장은 “지금과 같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편을 가르고 패싸움 하듯 행동하는 건 선진화된 사회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한 발짝 뒤에 서서 양쪽을 다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시민 사회와 정치권 모두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소통’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 전 대법관은 “내 생각이 꼭 옳지도, 타인의 생각이 꼭 틀리지도 않는다”면서 “나와 입장 차이를 보이는 상대가 있다면, 그는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됐는지 여유를 갖고 헤아려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 전 총장은 “진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사회갈등 해결을 위한 답은 결국 소통”이라면서 “자기 말만 해서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서로 대화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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