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밍글스 강민구 셰프 인터뷰
미슐랭 3스타…“비결은 장”
“한국의 장 ‘조화의 매개체’”
“한식을 세계 미식 주류로”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미식의 정점에 오르니, 그곳엔 ‘장(醬)’이 있었다.
악식으로 취급받던 ‘한국의 맛’이 있다. 해외여행 자유가 풀린 1980년대, 한국인 여행객들이 꼭 챙긴 것이 있으니, 바로 ‘장’이었다. 해외 음식에 경험이 부족한 한국인들은 외국에만 가면 쫄쫄 굶기 일쑤였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한국인들에게 생존을 위한 구호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장을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장이 풍기는 냄새와 모양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된장을 똥으로 오해해 신고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한국의 장은 미식과 거리가 먼 존재로 치부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미식의 세계에서 장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악식에서 미식으로, 미식에서도 그 정점에 오르기까지. 그 길에는 셰프들의 땀과 눈물이 베어 있고, 중심에는 강민구 셰프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 미식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장을 활용한 요리로 그는 미슐랭 3스타, 월드레스토랑 44위, 아시아레스토랑 5위에 올랐다. 숫자로 보여진 성과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 그를 넘어선 이는 없다. 한국 미식 역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강민구 셰프에게 장은 단순한 식재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장은 그가 추구하는 미식의 정체성이다. 한식의 뿌리며, 동시에 미식의 세계를 이어주는 조화의 매개체다.
“장은 한식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식재료입니다. 거기에 더해, 조화의 매개체입니다. 장을 만나고 제 요리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더함에서 덜어냄으로요. 장의 맛을 살리고자, 또는 장을 이용해 다른 재료의 맛을 돋보이게 하고자 저는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닌 덜어냄을 택했습니다. 장을 이용하면 다양한 재료가 없어도 복합적인 맛을 낼 수 있거든요. 여기에는 여백이 미, 절제의 미를 담고자 하는 뜻도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전통적 미학(味學)이라 생각합니다.”

강민구 셰프와 장의 인연은 늦게 시작됐다. 서른 한 살, 셰프로서 자리매김을 시작한 그는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장에게 다가갔다. 강민구 셰프에게 장의 매력을 알려준 두 명의 스승이 있다. 조희숙 셰프와 정관 스님이다. 한식의 대모로 불리는 조희숙 셰프는 그에게 장의 중요성과 요리 기법을 가르쳤다. 요리하는 수행자 정관 스님은 장의 진짜 맛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담궈 주신 장을 먹곤 했지만, 장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건 셰프가 되고 난 후였어요. 막연히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 속 사명감이 장을 찾게 만든 것 같아요. 2015년, 조희숙 셰프님과 정관 스님을 만나 장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그분들을 만나 지금의 제 요리가 완성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장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제 요리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장은 양식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강민구 셰프는 장이야 말로 조화를 이루는 ‘유연한 식재료’라고 평가했다. ‘조화’ 그것이야말로 강민구 셰프가 장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조화는 융합을 통해 창조를 이뤄낸다. 조화는 단순히 ‘1+1=2’ 개념이 아니다. 조화는 창조를 통해 더 큰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조화가 있기에 1+1은 10, 100 그리고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 장이 만들어 낸 조화의 결과물. 그것이 이끄는 맛의 신세계. 강민구 셰프의 미식이다.
“현대의 장은 서양요리와 정말 잘 어울립니다. 특히 올리브유나 파르메산치즈 같은 이태리 음식과의 궁합이 좋습니다. 고추장 같은 경우에는 이미 미국에서 새로운 소스로 각광을 받고 있을만큼, 미국의 칠리 요리와도 잘 섞이고요. 장의 맛을 제한했던 건 우리 스스로 그 사용 방식에 한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장을 양식에 끼워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는 맛의 조화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장을 넣어 더 맛있어지거나. 장을 넣어 새로운 맛이 탄생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장과 양식의 조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 조화 속에서 언젠가는 장이 세게 속에서 대중화된 식재료로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밍글스의 대표작 ‘장트리오’에서 우린 강민구 셰프가 지향하는 미식을 엿볼 수 있다. 된장을 넣어 만든 프랑스 요리 크렘브륄레에 간장으로 카라멜라이징한 피칸을 얹는다. 고추장에 섞인 흑미 튀밥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스키폼을 올린 뒤 마지막에 고추장으로 만든 파우더를 흩뿌린다. 글로만 보면, 도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을 이 음식은 예상치 못한 맛의 조화를 선사한다. 단맛과 짠맛, 부드러움과 바삭거림, 감칠맛과 매콤함 등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미감(味感)이 이 음식에 담겼다. 그것들은 따로 떠돌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미식의 신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한식의 세계화’…더 한국적으로, 더 전통적으로

강민구 셰프에게 요리는 운명과 같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셰프를 꿈꿨다. 브라운관 속 셰프들의 요리하는 모습에 그는 금새 빠져들었다.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취사병을 전역한 후 미국 마이애미로 떠났다. 세계적인 요리사 마츠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 아래에서 요리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덴마크와 스페인 바스크 지방까지. 미국과 유럽을 넘나드는 ‘요리 수행’을 거쳤다.
수행을 마친 그는 한식을 세계 미식의 주류에 올려놓겠다는 일념으로 2014년 한국에 돌아와 밍글스를 오픈했다. 빗물이 새는 지하에서 시작한 밍글스는 10년이 지난 지금 컨템퍼러리 한식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한식이 갈 미래를 개척하는 선구자 역할도 하고 있다. 미슐랭 3스타를 부여한 배경에도 그런 상징적 의미가 담기지 않았을까. 파인다이닝 업계가 밍글스의 변화를 항상 주목하는 이유다.
“밍글스 개업 후 처음 2년은 한식 20%에 양식 80% 비율의 조합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컨템퍼러리 한식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장을 알고 난 요리의 전환점을 맞이한 뒤 현재는 한식이 80%, 양식이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과 한식의 근원을 존중하면서 서양식 기술과 감성을 더해 새로운 밍글스만의 요리가 탄생한거죠. 한식의 영역을 확장한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밍글스라는 이름에는 재밌는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그룹과외를 하던 강민구 셰프가 영어단어를 외우던 중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조화를 뜻하는 ‘밍글(mingle)’이었다. 무심코 친구들에게 “나는 나중에 밍글이라는 식당을 만들거야”라고 했다. 친구들은 그게 재밌었는지 강민구 셰프에게 강밍글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걸 본 과외선생님은 “민구는 나중에 정말 잘 될 것 같아”라고 진심어린 응원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이 제게는 힘이 됐어요. 정말 평범했던 저에게 성공할 것 같다고 무심코 하신 말이 지금까지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 보면, 그 말이 제겐 큰 울림이었던 거 같아요. 요리사가 되기까지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많아요. 가장 먼저 저희 부모님. 반대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곁에서 제가 하고 싶은 꿈을 지원해주신 제 부모님. 응원을 해주신 과외 선생님과 해외의 유명 레스토랑 셰프님. 조희숙 셰프님과 정관 스님. 마지막으로 지금 곁의 동료들.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가장 소중한 보물들이에요.”

밍글스의 미래는 역시 ‘한식’이다. 지금보다도 더 한국적으로, 더 전통적으로,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나아가는게 밍글스의 지향점이다. 그것이 강민구 셰프의 목표다. 처음 밍글스를 오픈했을 때 가졌던 소망, ‘한식의 세계화’를 아직도 강민구 셰프는 꿈꾼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는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외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 몰라요. 하지만, 사명감이랄까요. 밍글스가 집중해야 할 것,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건. 한식의 세계화. 한식을 미식의 주류에 놓는 거에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의 정상에 오르고자 한다. 세계의 정상에 가는 길, 품에는 장을 끌어안고 있다. 과거 장을 똥으로 치부한 그들에게 장의 미(味)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리라. 그렇게 편협은 깨지고, 보편적 미식으로 한식이 자리잡으리라. 그는 믿고 있다. 그 소망이 이뤄지기를.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