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서상범 기자ㆍ이영돈ㆍ손정은ㆍ신보경ㆍ유현숙 인턴]이제까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즉, 솔로와 커플의 투쟁이었다. 커플들은 종교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솔로들을 억압해왔다. 그 억압은 특히 모태솔로들에게 가혹하게 내려졌다. 모태솔로들의 수난은 멀게는 3천 년 전, 페니키아에서 처녀들의 처녀막을 깨뜨리는 ‘파과(破瓜)의식’에서부터 오늘 날, ‘만 25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된다는 현대판 마녀사냥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사와 함께 해 왔다.
모태솔로들을 향한 커플들의 억압은 실로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스파르타인들은 결혼을 후예를 낳는 신성한 의식으로 여겨 독신을 금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로마와 나치 독일은 솔로들에게 부당한 독신세를 물리기도 했다. 심지어 백년 전쟁에서는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는 모태솔로라는 이름으로 잔혹하게 화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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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 수난사는 비단 서양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에서도 모태솔로들은 살아있는 귀신취급을 받았다. 어사 박문수를 비롯해 존경해 마지않았던 인물들이 모태솔로를 천재지변이나 일으키는 원혼 취급을 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연대기로 보는 모태솔로 수난사 인포그래픽(디자인=유현숙 인턴)
모태솔로들에게 가해진 잔혹한 폭력들 속에서도 그들은 평화의 날을 기다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모태솔로들에 대한 억압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모태솔로 수난사(史)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이 억압의 끝에 모태솔로들이 해방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모태솔로 수난사를 정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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