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란 수식어로 달려온 18년…이승엽의 두번째 전성기는 지금부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힘든 것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그 자리를 명예롭게 지키는 것이다. 1995년 여드름 자국이 거뭇거뭇 남은 앳된 소년이 그라운드에 등장한 뒤 18시즌을 보내는 동안 한국 프로야구는 이승엽, 그 이름으로 쓰였다.
이승엽<사진>은 올 시즌 126경기에 나서 타율 0.307(6위), 홈런 21(5위), 타점 85(3위) 등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36세란 적지 않은 나이와, 일본 무대에서의 씁쓸한 퇴장을 감안할 때 그의 복귀는 기대보단 우려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친정팀 삼성은 2011시즌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휩쓸었다. 앞서 한국 복귀설이 조심스레 흘러나올 당시 선동렬 감독이 “돌아와도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못박은 것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 전력에 이승엽만 보탠 상황. 자칫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 받을 수도 있었다. 시즌 초반 삼성이 하위권을 맴돌 때 이승엽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승엽의 존재는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빛났다.
넘치는 힘 대신 정교함으로 무장한 이승엽은 4월에 타율 0.406을 기록하며 최형우의 극심한 부진 속에서 타선을 이끌었다. 6월엔 삭발투혼으로 후배들의 승리 본능을 일깨웠다. 이승엽은 단순히 잘 치고 잘 달리는 선수가 아닌, 위기를 극복하고 팀을 이끌 줄 아는 지혜로운 타자였다.
이처럼 그라운드 안에서 늘 화려한 인생을 산 이승엽은 일상에선 ‘국민타자’란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잠잠하다. 이승엽과 함께 야구판을 휘어잡은 수퍼스타들이 그라운드 안팎의 크고 작은 문제로 팬들의 지탄을 받고 일부는 사라져 갔지만 이승엽만은 예외였다. 이승엽은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 연봉과 CF출연 등으로 받은 돈은 착실히 모아 부동산에 투자했다. 최근 한 토크쇼에 출연한 이승엽은 350억원대 부동산 소유에 대해 “야구만 해서 벌었다”고 말했다. 그의 올 시즌 연봉은 옵션 포함 11억원.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칠 땐 4년 간 30억엔(약240억원)에 도장을 찍기도 했다. 프로선수로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 국내 스포츠 스타 가운데 부동산 1위 부자임에도 호화 귀족 논란 같은 잡음이 일지 않는 이유다.
딱 한 번 이승엽의 기억에 오점이 있다면 지난 2003년 8월 9일 대구에서 그라운드 난투극을 벌인 사건일 것이다. 당시 이승엽은 LG와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자 망설임없이 달려나가 투수 서승화와 주먹다짐을 벌였다. 좀처럼 감정기복을 보이지 않는 이승엽이기에 당시 사건은 난투극 자체보다 ‘대체 이승엽이 왜?’에 초점이 맞춰질 정도였다. 이승엽은 방송을 통해 “야구선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돼야 할 프로선수가 난투극을 벌였다는 것에 후회한다”며 마음에 남아 있는 빚을 갚았다.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일군 삼성은 다음 시즌에도 독보적인 우승 후보로 꼽힌다. 이승엽과 진갑용, 박한이 등 삼성의 대표선수들이 건재한데다 심창민과 이지영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도 무섭다.
올 한국시리즈 6경기에서 23타수 8안타(타율 0.348) 1홈런, 7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사상 첫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이승엽의 영광도 일찌감치 예약돼 있다. 2003시즌 세계 최연소 300홈런, 아시아 통산 한 시즌 최다 56홈런을 이어 올 시즌엔 한ㆍ일 통산 500호 홈런, 8년 연속 한국 프로야구 20홈런 등 대기록을 작성했다. 이승엽은 다음 시즌 7개의 홈런만 추가하면 양준혁이 보유한 국내 최다 홈런 기록(351개)를 뛰어넘는다.
내년 초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 다시 한 번 ‘국민타자’의 위용을 뽐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승엽은 첫 WBC에서 홈런왕(5개), 타점왕(10개)을 거머쥐며 세계 무대에서 이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승엽이 또 한 번 포효하는 날을 기대한다. 김우영 기자/k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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