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터키 바실 자하로프 적대국 위협 빌미로 거액 무기거래 그리스·터키·러시아 오가며 세일즈
2010년 세계 국방비 1조6300억弗 무기판매액 90%가 美·서유럽
구소련 붕괴이후 소련산 대거 등장 최근 北 외화벌이용 수출 횡행
20세기 초 죽음의 장사꾼이라고 불리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출생과 일생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지만 1849년 터키생 바실 자하로프라고 알려진 이 사내는 살아 생전에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프랑스에서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그가 당시 잠재적 적대관계에 있던 그리스와 터키 사이를 오가며 기막힌 세일즈를 벌인 일화는 오늘날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무기였던 잠수함 1척을 그리스에 먼저 팔았다. 그리고 곧 이 사실을 터키에 알렸다. 터키는 잠수함 2척을 샀다. 기지가 번득이는 이 무기상은 다시 터키와 적대 관계에 있던 러시아에 터키의 위협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잠수함 4척을 샀다. 브로커 역할을 한 이 사람은 거액의 무기 거래 사이에서 엄청난 커미션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은퇴 후 몬테카를로에서 도박장을 운영했다.
바실 자하로프는 역사의 장막 뒤에 숨어서 수많은 정치인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수백만명의 목숨을 자신의 이익과 바꾼 죽음의 상인 그 자체였다. 또 러일전쟁, 발칸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에 개입하며 전함과 잠수함 수십척, 항공기 수천대 등을 판매한 희대의 무기상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무슨 제품이든 만들었으면 일단 팔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오늘날의 무기시장도 그가 활보하던 100여년 전과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지금도 바실 자하로프와 같은 무기상들이 넘쳐나고 있다. 무기는 그 시대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요, 국가안보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어떤 나라든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거액의 비용을 지급할 용의가 있다.
2012~2013년 한국군무기연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
세계 국방비 지출 규모 추정치는 1조6300억달러다. 전년에 비해 1.3%, 2001년에 비해 50%나 증가한 규모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 위기에 몰린 유럽에서는 2010년께 국방예산이 감소했지만 미국,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그밖의 대륙에서는 국방비 지출이 일제히 증가했다.
국방비 증가에 있어 국가가 스스로 국방비를 올렸는지, 무기중개상의 활약에 의한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가나 집단의 첨단 무기에 대한 수요가 있고, 무기중개상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는가 하면, 바실 자하로프같은 무기상들의 개입으로 국가적 무기 수요가 높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전 세계적 무기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2009년 기준 세계 100대 무기생산업체의 총 무기 판매액은 2002년 이후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59%나 증가했다. 여기서 10대 무기생산업체의 판매액은 2280억달러로 100대 기업 총 무기 판매액의 약 57%를 차지한다. 또 세계 100대 무기생산업체 중 78개 업체가 미국 또는 서유럽을 기반으로 하며, 이들의 판매액이 전체 판매액의 90%를 넘는다. 100대 업체 중 아시아 업체는 10개, 한국업체는 2개만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국제 무기거래는 크게 정부 간 거래인 대외군사판매(FMS)나 업체의 직접상업판매로 이뤄진다. FMS는 정부기관의 통제 아래 거래실적 데이터 관리가 가능하나, 상업판매는 각 업체가 각국 법에 따라 판매하는 형태여서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제 무기거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적 무기 암거래상이 활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초반에는 국제 무기 암거래시장에 소련산 무기가 대거 등장했다. 최근에는 불법무기 수출로 외화벌이를 하려는 북한이 무기 암거래시장의 주요 수출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7월 마이클 렌제르라는 한 영국인 무기중개상은 북한 미사일을 수입해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에 팔려다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일종의 국제협력체제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출범에도 북한은 한몫 했다. 2002년 스커드 미사일을 실은 북한 선적 서산호가 예멘 연안으로 접근하다가 검색을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인 2003년 대량살상무기 암거래를 통한 9ㆍ11 테러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는 미국의 주도로 11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무기나 무기 관련 물자의 이동을 제한하는 PSI가 발족한 것이다. 2009년부터 PSI 해상차단훈련에 참가한 우리나라는 지난 9월 미국, 일본, 호주 해군이 참가한 가운데 부산 남동해상에서 이 훈련을 주도하기도 했다.
무기 거래 관련 통계로는 미 의회의 연례보고서와 스톡홀름 전략문제연구소(SIPRI) 무기거래 데이터베이스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 자료에는 직접 상업판매 실적이 빠져 있다. 2011년 9월 발표된 미 의회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세계 재래식 무기거래 계약 규모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년 대비 38% 줄어든 404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2007~2010년 계약 규모는 2397억달러로 2003~2006년의 2032억달러보다 약 15% 증가했다.
세계의 무기 규모 거래는 이렇게 엄청난 규모로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무기 거래상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바실 자하로프는 사후에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하길 꺼려했다. 그에 대한 회고록에서 한 증언자는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수백만의 목숨을 좌지우지했고,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수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