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0회> 사랑을 위한 의식 (1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그 순간, 평양골프장에서는 당 간부 도형철이 주축으로 나서서 벌이는 ‘전 세계 여자 프로꼴푸 겨울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아하게 ‘프로골프 대회’로 이름을 내걸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당의 서열 높은 간부들 고집 때문에 ‘프로꼴푸 대회’라고 한 것이 못마땅했지만… 도형철은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참가해주셔서 고맙습네다. 강유리 선수!”
그는 강유리 선수에게 찾아와 거의 큰절을 할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긴 진심으로 감사하는 모양이었다. 강유리 뿐만이 아니라 캐리 웹, 크리스티 커, 제니퍼 로자레스, 폴라 크리머에게도 감사의 큰절을 올렸으니 어쩌면 그의 코엔 굳은살이 잡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염병…”
문제는 유호성이었다. 강유리 선수의 후견인 정도로 북한까지 따라 들어간 그를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에 부아가 났을까? 혹시 자동차 경주에 미친 제6사단장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하여간 오뉴월 개구리 보듯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북한 군중들 틈에서 그는 울화가 치미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열 받게 한 건 강유리의 높은 인기였다. 아무리 골프에 무지한 북한 사람들일지언정, 무릎 위 40cm에 달하는 빨간 핫팬츠에 메탈소재 반팔 티셔츠를 걸친 8등신 글래머 선수에게 눈이 뒤집히지 않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강유리 선수 만세! 만만세!”
뭐라고? 강유리 선수 만만세라고? 유호성은 차마 눈꼴이 시어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북한 백성들은 마치 김일성을 대하듯 열광으로 그녀를 대하곤 했으니… 염병! 이란 욕이 저절로 튀어나오곤 했다는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던가? 옛날 고리짝 서양의 철학자가 한 말이 이제야 새삼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파파라치가 따라붙더라도 재벌가의 아들인 자기에게 더욱 무게를 두지 않았던가.
회사든 학교든 술집이든, 심지어는 초등학교 동창회든 어디든 간에 유호성은 재벌가의 아들로서 톡톡히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오로지 북한 땅에서는 그를 강유리 선수의 골프백이나 들어주는 몸종으로 여기질 않는가 말이다.
“푸핫! 이런 염병!”
그는 연거푸 거친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이를테면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질투심이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재벌가의 후계자로 살아온 남자의 고질적인 본능이 서서히 그를 끓게 만드는 중이었다.
우르릉, 우르릉!
이제 막 골프대회를 시작하려는 그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울려오고 있었다. 유호성으로서는 끓는 가슴을 억지로 부여안고 강유리 선수의 뒤꽁무니를 하릴없이 따라다니던 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이버였던 그는 천지를 진동하는 그 소리가 무쇠로 만든 머신이 토해내는 엔진소리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리야, 잠깐만!”
“어딜 가요? 오빠. 이제 막 대회가 시작되려는데…”
이제 막 대회가 시작되려는데 ‘시다바리’가 어딜 가는 것이냐고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격지심일까? 아니면 변종의 질투?
골프를 혼자 치지 둘이서 치나? 유호성은 그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골프장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첫 번째 홀이어서 정문과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