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파동 계기 10년 숙원 정유사업 진출 원유 확보능력 인정받아 유공 인수자로
응용화학사업 꾸준한 영역 확장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완성
창업수성(創業守成)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여기서 ‘창업’이란 어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고, ‘수성’은 이미 이룩한 성과를 잘 보전해 간다는 것이다. ‘창업’ 못지않게 ‘수성’이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그랬다. 형인 담연(湛然) 최종건 창업회장의 유지를 물려받아 SK를 국내 3대기업으로 발전시킨 이가 바로 그다. ‘제2 창업자’인 셈이다. 그 기저에는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의 완성이 원동력이 됐다. 수직계열화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정유회사인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였다.
▶‘석유에서 섬유까지’…꿈의 시동=울산 고사동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 826만㎡(약 250만평)의 광활한 부지 위에 정유공장 5개와 고도화 시설 등 각종 공장이 들어섰다. 이곳에는 석유제품과 원유 등을 담는 각종 저장탱크만 500여개가 있고, 하루 정제되는 원유도 84만배럴이다. 인천콤플렉스까지 포함, SK에너지의 원유 정제능력은 하루 110만배럴로 세계 3위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선대회장은 유공 인수 뒤 그룹 회장과 유공 사장을 겸직했을 정도로 애정이 남달랐다”고 전했다. 이어 “사장을 그만둔 뒤에도 1년에 5~6번씩 내려왔다”며 “사무동 건물 높은 곳에서 공장 전체를 조망하고 흐뭇해했다. 마치 자신이 일군 광활한 목장을 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목장이라는 표현은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이 이룬 정유공장,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의 정점을 내려다보는 성취감은 선대회장에겐 남달랐을 것이다.
1970년대 SK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사업으로 선정된 석유화학산업에 진출했다. 1975년 ‘섬유에서 석유까지’ 수직계열화 의지를 천명하고 ‘석유회사 필요론’을 설파한 선대회장은 섬유회사(선경직물)에서 시작한 선경을 에너지ㆍ종합화학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욕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수직계열화 완성…꿈의 결실=1978년 제2차 석유파동은 ‘공급 부족’에서 기인했다. 이란을 비롯한 일부 산유국이 감산을 단행하자 메이저 석유기업들은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공 지분 50%와 경영권을 갖고 있던 미국 걸프 사(社)도 1980년 3월 유공에 원유 공급을 중단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유공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2개월 뒤 정부는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유공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그해 11월 정부의 발표는 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중견기업 수준이었던 선경이 자신보다 규모가 큰 유공의 인수자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정부의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선경은) 우리나라 종합상사로서는 처음으로 상당량의 원유를 유공에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 원유 추가 확보의 잠재력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산유국과의 친분도 두터워 오일머니 유치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선대회장은 오랜 기간 쌓아온 산유국 인맥을 통해 원유 확보 능력을 직접 입증해 보였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지인들이 운영하고 있던 아랍계 은행으로부터 1억달러를 조달, 오일머니 유치 능력까지 증명했다.
SK에 정유사업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숙원사업이었다. 기업이 한 사업에 제대로 진출하려면 최소한 10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선대회장의 신념이 빛을 본 것이었다.
1980년 당시 유공 울산공장은 작은 정유공장 3개만 갖추고 있었다. 선대회장은 이곳에 설비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울산콤플렉스는 꾸준한 확장을 통해 정유사업 외에 석유 기반의 각종 응용화학사업까지 영역을 넓혔다.
1991년 6월 유공 울산콤플렉스에 폴리에틸렌(PE) 공장, 파라자일렌(PX) 공장 등 새 공장 9개가 들어서며 ‘석유개발-원유정제-화학제품 생산’으로 이어지는,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가 드디어 완성됐다. 그룹 창립 38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콤플렉스에는 수직계열화를 이룬 ‘거인 선대회장’의 흔적이라곤 ‘수직계열화 완성 기념’으로 구내식당 앞에 심은 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사옥이나 집 살 돈을 아껴 회사와 공장에 투자해야 한다며, ‘전세 사옥’을 전전하고 집 한칸 없이 워커힐 빌라에서 지내던 그의 검소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풍모는 이 작은 나무에 담겨 있다.
<울산=신상윤 기자> /ken@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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