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며칠째 지영(가명)이가 공부방에 나오지 않았다. 신인식(25) 드림공부방 팀장은 걱정되는 마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세시였지만 수화기 너머 술취한 지영이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애한테 관심 없으니까 전화 끊으쇼”

학교에서 소위 ‘짱’으로 통한 지영이는 애초부터 학교에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던 아이였다. 중학교도 일찌감치 그만뒀다. 마지못해 공부방에 나오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결석을 밥먹듯 했다. 그러던 지영이가 최근 공부방에 열심히 출석하며 고입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멘토인 신 팀장 덕분이다. 신 팀장은 공부방에서 지영이의 고민을 상담하며 미래에 대한 꿈과 불안을 함께 고민했다. 이성에 관심이 많은 지영이에게 “공부 못 하면 시집도 못 간다” 놀리며 공부를 유도하기도 했다. 신 팀장은 “지금은 오히려 먼저 와서 공부를 하고 싶으니 가르쳐 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올 정도”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서울고등법원 공익근무요원들은 지난 1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멘토가 돼 주기로 뜻을 모았다. 서울가정법원의 협조로 세 곳에 공부방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드림 공부방’.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았거나 학업에 소홀했던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영이처럼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 보살핌을 제대로 못받고 자란 청소년들이다.

광진구 드림공부방에서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선 공익근무요원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가정법원]
광진구 드림공부방에서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선 공익근무요원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가정법원]

출발은 쉽지 않았다. 공부방 문을 연 첫날, 공익요원들은 아이들이 한 명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여야 했다. 생활 지도를 해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신 팀장은 “학교를 그만둔 아이가 전체의 40% 정도로,낮에 자고 밤에 활동할 정도로 생활 관리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며 “한동안은 고정적으로 나온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광진구 공부방에는 다섯 명이 왔지만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큰 탓에 아이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멘토가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수신거부를 한 아이도 있었다.

공익요원들은 아이들이 싫어하는 공부는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복불복 게임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일에 집중했다. 배인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형편 탓에 놀이공원이나 극장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며 “여러 문화체험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적응을 도와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학생들과 멘토는 서로 허물없는 이야기까지 나눌 정도가 됐다. 자연스럽게 공부 얘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아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차비가 없는 아이들은 걸어서라도 공부방에 올 정도로 열성을 보인다. 한 아이는 올 초 폭설이 내리던 날 슬리퍼를 신은 채 먼 거리를 걸어와 멘토들을 감동시켰다.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검정고시에서 두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오는 8월에는 6명이 검정고시를 치를 예정이다. 공부방 사업 자문을 맡고 있는 이명숙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검정고시에 통과한 아이들은 벌써부터 대학생활을 꿈꾸고 들뜬다”며 “아이들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aq@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