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지난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여명의 그룹 수뇌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 걸 바꾸라”고 지시하며 역설했던 ‘신경영 선언’.
지금의 삼성의 핵심경영을 이 신경영 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에서의 폭탄선언은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만드는 초석이 됐다.
이 신경영은 단순히 삼성의 과거에서 분리해 새 삼성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성 창업주인 호암의 경영이념이 씨줄낱줄로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경영 선언과 함께 제시된 삼성인의 정신 ‘고객과 함께 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는 바로 호암의 경영철학에서 출발한다.
도전은 호암의 상징이었다. 호암은 대구 서문시장에서 삼성상회, 서울에서 삼성물산을 창업해 큰 돈을 벌고도 한국전쟁으로 모든 사업기반을 잃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신사업 모색에 나섰다. 여기서 탄생한 제일제당으로 호암은 2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고, 제일모직을 세워 당대 모직의 선두격인 영국기업들과 비견할만한 제품을 내놓으며 세상을 깜짝 놀래켰다.
호암의 최대 결단이면서 성공적 결과를 불러일으킨 전자ㆍ반도체 진출은 오늘날 ‘막강 삼성’의 토대가 됐다. 미래를 보는 통찰력은 경영자로서 호암의 최대 장점으로, 이후 삼성 경영프로젝트에 곳곳에 반영된다.
이처럼 좌절 속에서도 더 큰 무대를 겨냥해 도전을 멈추지 않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창조하는 신경영의 모태는 호암의 발자취에 잔뜩 묻어있다.
그래서 삼성 신경영은 호암 철학과의 단절이 아닌, 계승 발전이다. 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창조론, 긴장론, 품질론도 바탕은 호암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선대 창업주의 정신엔 생명력이 숨쉰다. 신경영 선언 후 삼성은 날개를 달았다. 10년 만에 매출은 4배로 뛰었고, 이익은 무려 66배 상승했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현재 소니ㆍ필립스 등의 TV 강자를 물리치고, 노키아ㆍ모토로라 등의 휴대전화 자이언트를 누르며 가전과 IT 모든 분야를 석권한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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