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les, garcons : quels jouets ? 아이들에게 어떤 장난감을 선물할까?
연말연시 시즌에는 막내딸에게 트럭보다 인형을 선물하는 게 잘한 일일까 늘 자문해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4~5세 나이부터 이미 여자다움을 흉내내는 어린애에게서 그 어떤 야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떤 장난감도 순진무구하지 않다. 사내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전사(戰士)와 정복자에 대한 남성적 이상을 강조한다. 반면 계집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순종적이고 장식적인 작은 인형의 위상 속에 그들을 가두어버린다.
섹스에 관련된 주제들을 망라하고 있는 뛰어난 인터넷 사이트인 위킨(Wikine)에는 한 광고가 올라가 있다. ‘위(Wii)’를 위한 가짜 광고인데, 이 광고는 활력이 넘치는 유머를 통해 전통적인 역할 분담을 통렬히 공격한다. 광고 속에서 두 명의 30대 남자가 리모컨을 조작하면서 가상의 자동차경주를 벌이며 즐거워하거나, 상상 속의 좀비들을 저격하고, 3D로 된 테니스코트에서 자신들 라켓을 부러뜨린다.
그동안 그들의 배우자들은 몹시 지루해하면서 소파에 앉아 발을 굴러대는 남자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남자들이 “부릉 부릉”하고 소리를 질러댈 때 여자들은 “휴”하고 한숨을 짓는다.
연말연시를 맞아 남자들은 자신들 배우자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위’를 선물하려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그녀들 역시 비디오게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침내 여성들 역시 가상의 게임을 통해 다리미질을 하고, 청소기를 빨아들이며, 설거지를 하고, 뜨개질을 하며, 심지어 리모컨을 조작하면서 오럴섹스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이상한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광고는 아이들에게 하는 선물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영속시키지는 않을지 자문해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들이 지배적 사회도식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해 1994년에 창설된 유럽 소녀지지협회는 ‘학습교재 속에서 성차별을 제거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협회는 책의 내용, 그 내용이 아이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이미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작가 알베르 코헨(Albert Cohen)이 작품 ‘영주의 딸’ 속에서 구사한 용어를 차용하자면 사내아이들은 ‘바부이네(babouiner)’에 대한 의무를 지속적으로 느끼는 존재다. ‘바부이네’란 용어는 원숭이가 보란 듯이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을 지칭하는 동사이다.
동시에 이 용어는 지배적인 수컷을 흉내내고,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거만하며, 잘난 척하고 자발적이며, 잔인하고도 털이 많이 난 수컷이 암컷을 보호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는 암컷을 강제로 범할 수도 있다. 여성은 오직 남성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쓸모가 있다. 부차적으로는 자신의 배설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여성을 이용한다.
‘영주의 딸’ 속에서 알베르 코헨은 이런 편의주의적 교육이 남성들로 하여금 마초가 되도록, 여성들로 하여금 대형 도자기가 되도록 강요한다고 지적한다. 또 우리 아이들이 성차별주의를 하나의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뿐 아니라 인종차별주의나 계급, 종교, 성에 따른 차별 같은 모든 형태의 불평등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사내아이들에게 ‘기사(騎士)’의 역할을 부여하는 사랑의 메커니즘 뒤에서는 탄압과 관련된 무자비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장난감도 순진무구하지 않다. 다음은 작품 속에서 발췌한 표현들이다.
“도처에서 원숭이들을 흉내내고 있다. 힘에 대한 동물적인 모방과 존경이, 살육과 무력을 일삼는 부류에 대한 경외심이 차고 넘치고 있다.”
“남성성, 위험, 지배, 확신, 보장, 에너지, 성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턱, 항상 틀림이 없는 잘난 척하는 수컷, 어조가 단호하고 냉혹한 모습…. 한마디로 여자들이 사랑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녀들이 당신을 잠재적인 살인자로,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힘이란 것도 1만 년 전 수컷이 처녀림 속에서 태고적 친구인 암컷을 보호해주었던 해묵은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원숭이 흉내는 나폴레옹의 조그마한 선의에도 열광하는 자들의 전유물이다. 나폴레옹은 ‘나에게 50만명의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내뱉었던 인물이다. 그들 모두가 강자 앞에서 여린 구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자들의 가장 미미한 부드러움조차 감미롭다고 느끼면서 거기에 홀렸던 것이다.
연극 속에서 그들은 예기치 않은 선의를 보여주는 늙은 대령의 모습에 감격했다. 노예 근성! 그러나 아주 선량한 사람은 일정 부분 늘 어리석기도 하다. 연극 속에서 악한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적은 없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종종 우스꽝스럽게 보이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웃게 만든다.
게다가 용자(勇者)나 선량 같은 표현 속에는 늘 모멸적 뉘앙스가 들어 있다. 하녀를 지칭하는 프랑스어 표현 ‘bonne’는 곧 선량한 사람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지 않은가?”
일부 사람들은 ‘영주의 딸’을 읽으며 냉소가 충만한 사랑소설이라 판단하지만, 이미 작품 속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을 알리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동일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제목이 붙은 존 그레이의 책을 단지 ‘다른 성을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북 정도로 여긴다.
역할의 전통적인 분배, 다시 말해 불평등을 유지하려고 하는 의도가 책 속에 들어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자유롭게 자신들 장난감을 고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내버려두라.
콜린 극장에서 1월 16일까지 상연되고 있는 입센(Ibsen)의 작품 ‘인형의 집’을 놓치지 말 것. 입센이 1879년에 저술한 이 작품의 연출은 스테판 브라운슈바이크(Stephane Braunschweig)가 맡았는데, 놀랍도록 동시대적인 느낌을 준다. 소녀들의 놀이를 인형놀이에 한정시킨다면, 당신은 그 아이들을 ‘대디’에게 종속되는 다산(多産)의 여성으로 만들 위험이 크다.
(이미지는 일본 본디지 모델 아게하 아사기(Asagi Ageha)의 포토)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