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여제(女帝)의 위기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유럽의 맹주 독일에 반기를 들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로존 위기 해법으로 주도한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이 거세진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가 등을 돌리면서 국제무대에서도 메르켈 총리의 우군은 없다. 사실상 고립무원이다.
메르켈 총리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유럽의 정치지형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돈줄을 쥔 독일은 프랑스와 연대해 긴축정책으로 유로존 재정위기를 돌파하려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선, 그리스 총선 등에서 긴축을 지지하던 정권이 무너지면서, 긴축정책의 동력도 상실됐다.
유로존은 긴축론과 성장론이 팽팽히 맞선 상황. 23일(이하 현지시간) 열릴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은 유로존 위기 해법의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부도설 등으로 위기가 증폭된 유로존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지, 파열음만 낼지 시험대도 될 전망이다.
최대 변수는 메르켈 총리의 태도다. 주요 외신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성장 대책이 다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성장론에 공감대를 형성한 EU 정상들이 긴축을 고집하는 메르켈 총리를 본격적으로 협공할 것이라는 얘기다.
성장정책을 요구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등판도 큰 부담이다. 유로존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가 불협화음을 낼 조짐은 일찌감치 감지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장외에서 메르켈 총리를 선제공격하기 시작했다. 올랑드는 독일의 강한 반대로 무산된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공식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또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차기 의장에 자국 재무장관을 앉히려는 메르켈 총리의 계획에도 제동을 걸었다.
메르켈 총리도 정면 충돌을 불사할 태세다. 그는 21일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기자들과 만나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존을 위해 협력하고 있으나,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회담에서 이견이 두드러질 여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사실상 프랑스가 주도하는 성장정책에 전혀 동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긴축 피로도가 높아진 유로존 안팎에서 수세에 몰린 메르켈 총리. 돈줄을 쥔채 유럽의 민심을 잃은 그가 어떤 묘수로 유로존 재정위기를 헤쳐갈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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