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은퇴한 김진식(56) 씨는 은퇴 8개월 즈음에야 더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상황에 ‘적응’이 됐다. 처음 며칠은 좋았다. 마침 친구도 다들 은퇴할 시기라 등산을 함께 가고 술도 한 잔 하며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딱 한 달이 지나자 친구 만나 마시는 막걸리 몇 천원도 부담이 됐다.
“자식들이 일찍 독립해 당장 큰 돈 나갈 일이 없는데도 버는 돈이 없다보니 교통비에 밥값에 술값에, 친구 만나는 것도 어느 순간 부담이 됐어요. 집에 온종일 누워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다가 점심 때 라면 끓여먹고…. 잉여인간 같다는 자괴감에 부부싸움만 늘었죠.”
생각을 바꾼 건 구청에서 하는 커플 스포츠댄스 모집공고를 보면서부터다. 30여년 가까이 사는 동안 부부는 공유하는 취미가 없었다. 아내를 졸라 함께 스포츠댄스를 배우면서 평일에는 조조영화를 보러 가는 등 함께 할 거리가 생겼다.
이렇듯 은퇴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연금 등 각종 재무적 설계도 필요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일인 만큼 생활 설계가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에 바빠 부부 간 그럴듯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장 은퇴 후 생활설계 준비에 들어서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선진국은 기업 차원에서 임직원의 은퇴교육에 나서고 있다. 1990년과 1993년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 2008년 비즈니스 위크의 은퇴하기 가장 좋은 10대 기업, 2009년 포천 선정 미국에서 은퇴하기 가장 좋은 기업 8위에 선정된 와이어하우저. 이 회사는 가장 오랜기간 은퇴교육을 운영한 곳 중 하나다.
와이어하우저의 은퇴교육에는 배우자 및 반려자가 꼭 함께 초대된다. 은퇴설계가 부부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사항이란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실제 행동변화를 이끌기 위해 세미나를 통한 교육이 이뤄진다는 것도 특징이다.
일본의 모바일 전자부품업체 세이코엡손은 회사 노동조합에서 은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라이프 업 유니온(Life Up Union)’이란 슬로건 아래 이뤄지는 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절약과 돈 불리기가 아닌 행복한 인생이다. 교육에 참석한 이들은 생활 설계안을 작성해 현재의 생활과 자산배분을 재점검하게 된다.
국내 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의 약 17.9%가 은퇴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 전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직업 적성과 창업ㆍ재취업 등 은퇴 후 진로에 따른 준비인 셈이다. 이 연구소 손성동 실장은 “한국 은퇴교육에서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전직지원 프로그램만 이뤄지고 있으나, 앞으로 재무와 비재무적 은퇴교육을 균형있게 실시해야 한다”면서 “근로자의 은퇴교육을 일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연진 기자> /yjsung@heraldm.com
yjsu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