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이어‘힐링캠프’통해 다시 정점에…인기프로 연연하지 않아도 잘나가는 예능의 흐름 속엔 늘 그가 있다
소통·치유의 토크쇼 힐링캠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 그런데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다
‘속세의 대변인’인 내 공격성 제동의 공감·혜진의 호기심이 희석
예능 넘쳐나는 요즘 방송가 고집부리면 당연히 잘려나가 PD·동료MC와 함께 흘러가는 게 연륜의 무게 아닐까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이경규는 흐름을 타는 데 강한 예능인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KBS로 이적해 올 때만 해도 미래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이 터지는 바람에 2010년 KBS연예대상을 받았고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남격’도 정점을 치고 다시 조용해질 무렵 치유를 전면에 내세운 SBS ‘힐링캠프’가 새로운 토크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경규는 여기에서 오랜 연륜의 예능MC답게 분위기를 주도하며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천부적인 스트라이커가 축구공을 따라다니지 않고 공이 가는 길목에 있듯이 이경규도 그렇게 잘나가는 예능에 항상 함께하고 있다.
-예능MC로서 생명력이 길다.
▶요즘은 프로그램을 론칭해 성공하기 너무 힘들다.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동시에 옆에서 비슷한 식당이 문을 연다. 그래서 새 프로그램 론칭은 엄두도 못 낸다. 최근 3년간 새롭게 성공한 예능은 ‘남자의 자격’ ‘나는 가수다’ ‘힐링캠프’ ‘런닝맨’ 4개 정도다. 이 중 내가 2개를 하고 있다.
특히 월요일과 목요일은 토크쇼 격전장이다. ‘힐링캠프’가 완만히 성장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힐링캠프’는 소통과 치유ㆍ공감을 주 내용으로 한다. 치료는 아니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런데 잘 들어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MC는 잘 들어주면서 횡설수설하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게 올바른 길로 유도한다. 잘못하면 게스트의 말꼬리를 잘라먹는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무조건 길게 찍어 편집으로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재료가 좋아야 한다. 나를 두고 생명이 길다고들 말한다. 나이 들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잘려나간다. 고집부릴 게 아니다. 그러다 MC가 혼자 독 짓는 늙은이 하다 끝난다.
- ‘힐링캠프’는 요즘 고민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로 화제다. 어떻게 MC로 참가하게 됐나. ▶처음부터 MC 출연은 정해진 상태에서 ( ‘야심만만’을 연출했던) 최영인 PD와 색깔을 찾아나갔다. 힐링, 치유를 내세운 만큼 야외로 나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토크쇼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힐링캠프’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였다. 토크쇼가 많이 방송되고 있는데 왜 ‘힐링캠프’를 시청할 것인가에 주력했다. 차별화를 의식했다. 이제 자리를 잡았다.
-토크쇼는 게스트가 중요하다. 섭외는 어떻게 하는가? ▶최강 게스트를 섭외한다. 최영인 PD가 인맥이 있고 뒤에서 열심히 뛴다. 내가 최민식을 섭외하고 한혜진도 소속사 스타들을 대거 출연하게 했지만 섭외는 전적으로 제작진의 몫이다. 나는 최영인 PD를 보고 선택했다.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과 하느냐도 중요하다. 역시 PD를 잘 만나야 한다. 젊은 날에는 오기로 할 수 있었다. PD가 내 감각보다 더 뛰어나다. 그 사람에게 몸을 맡기고 편안하게 가는 게 낫다. 이래라저래라 해봐야 먹히지도 않는다.
최영인 PD는 “ ‘힐링캠프’의 밑반찬은 이경규의 꾸미지 않은 생활인의 모습, 김제동의 진정성 있는 공감, 한혜진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차려졌다”고 말한 바 있다. 한혜진이 아이 같은 원초적이고 순수한 직설화법 질문으로 매력을 발산한다면, 방송물을 오래 먹은 이경규는 평범한 시민이 충분히 품을 만한 의문과 질문을 던져 공감을 이끌어낸다.
- ‘힐링캠프’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가식적으로 게스트를 띄워주는 걸 싫어한다. “CF도 열심히 하고 있죠?”와 같은 질문은 안 한다. 돈을 그렇게 주는데 열심히 안 하면 되겠는가. 나는 보통사람의 시각에서 일반인들이 가질 만한 보편타당한 질문을 주로 한다. 때로는 게스트를 약간 흠집 내면서 띄워준다. 마냥 칭찬만 하면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 차인표처럼 훌륭한 사람도 있고, 내 술친구인 박 사장이나 최 사장도 있다. 게스트의 찬란한 부분만 얘기하면 안 된다.
-어떤 게스트가 기억에 남는가.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연습하는 최경주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고, 최민식을 통해 배우라는 사람의 감성과 자세를 배웠다. 모교 은사인 안민수 교수가 출연했을 때 최민식이 울던데, 왜 우냐고 물어봤더니 “교수님이 가르쳐준 연기를 지금도 못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신은경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 아직 방송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패티김 선생님의 “황혼이 붉게 물들 때 그만두고 싶다”는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한 사람씩 인터뷰를 하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다. 추신수도 울고 갔다. 차인표는 경이롭다고 표현할 만큼 존경스러웠다. ‘힐링캠프’를 하다 보면 내가 큰 역할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한혜진, 김제동 등 MC진의 특색은?
▶한혜진은 심성이 곱고 포용력이 있다. 남자 게스트가 나오면 부드러워지고, 여자 게스트가 나오면 편해진다. 혜진이는 기대 이상으로 기둥과 같은 역할을 유머스럽게 해내고 있다. 다만 배우이기 때문에 너무 멀리 나가지는 말라고 했다. 그런 건 우리가 한다. 배우로 돌아가서도 예능의 느낌이 나지 않도록 배우와 MC의 중간 역할을 해 달라고 했다. 이제는 한 가지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 휴대폰 기능도 엄청나게 많지 않은가. 한혜진은 배우와 MC를 겸할 수 있다.
김제동은 게스트가 만만하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해준다. 게스트의 연령ㆍ스타일에 따라 달리 대해주지만 다정다감하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진돗개 같은 공격성을 제동과 혜진이 보호막으로 희석시켜 준다.
나는 게스트와 약간 긴장관계다. 그래야 녹화에 들어가서도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일부러 게스트와 인사를 나누지 않고 녹화에 들어간다.
- ‘남격’은 어떤가. ▶정점은 찍었지만 마니아층이 있다. 그분들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 좋은 미션이 나오면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 몸만들기가 중년 남자에게 자극을 줬다고 생각한다. ‘남격’은 나의 육체적 갱생 프로그램이다. 30년간 피워왔던 담배도 끊었고, 몸만들기를 통해 키운 식스팩(?)은 사라졌지만 계속 운동하고 있다. 앞으로 5년 후에도 살아남으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해부터 건강을 지키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남격‘의 미션은 나와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만 내가 지리산 등산, 하프마라톤 이런 것들을 언제 해보겠는가. ‘남격’을 통해 육체적인 건강을 다지고, ‘힐링캠프’를 통해서는 마음을 다진다.
-공황 장애는 다 나았나. ▶8개월간 약 먹고, 거의 치료됐다. 내 공황 장애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 내 자리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스트레스에 갱년기가 합쳐진 것 같다. 처음에는 병명을 몰라 진단받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 심장이 아파 심장병인 줄 알았다.
-예능MC로서의 자세와 계획은?
▶코미디언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뭔지는 모르지만 철학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지식만 많은 것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요즘 ‘고전 100선’ 읽기를 시작했다.
3년간 바짝 열심히 하고 그만둘 생각도 했다. 하지만 ‘생활의 달인’처럼 매일 하는 사람은 못 이긴다. 다작 속에 대작이 나온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하부 리그팀에 지기도 한다. 실패도 경험해야 한다. 사람을 성장시킨다. 요즘은 방송을 많이 하고 싶고, 늦게까지 해도 재미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