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과 중소기업, 그 두 단어가 제 성공의 키워드입니다.”
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지춘근(45) 프렉코 대표는 지난 날을 돌아보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것도,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중소기업에 들어간 것도 괜찮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지 대표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휴대전화 힌지의 국산화에 성공,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휴대전화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데 일익을 담당한 기능인이다.
지 대표의 성공신화는 1982년 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현 도화기계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그는 “뛰어난 머리를 타고난 것도 아니고 내세울만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닌 까닭에 그는 빨리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기능, 기술을 익히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공업고등학교 입학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타고난 끈기와 노력이 있었다. 지 대표는 성적이 뛰어나지 못했지만, 끈기와 노력에 더불어 포용력과 리더십이 있어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아끼던 담임선생님은 앞으로 반도체 금형기술이 미래 핵심전략 기술이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에서 배울 것이 더 많을 것이라며 반도체금형 전문기업인 세원금형을 추천했다.
입사 당시의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돈은 중요치 않았다. 일 한 만큼 실력은 늘어갔고 대우도 나아졌다. 반도체산업이 급성장 하면서 그의 금형기술도 정밀도가 더해졌고 담임선생님의 예상이 하나씩 실현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군 제대 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그는 1990년 크라운정공으로 이직한다. 최신 설비와 도전적인 회사분위기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초고속으로 승진, 최연소 부서장이 될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지춘근 대표는 배운 기술을 창의적으로 응용하고 싶은 욕심과 함께 기술을 배워 성공하겠다던 꿈을 떠올리며 창업에 뛰어든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8세였다.
종자돈 2500만원으로 6평짜리 상가건물을 임대해 1인 기업으로 프렉코의 전신인 유진정공을 설립했다.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했던 덕에 세원금형과 크라운정공에서 주문을 받으며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간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로 반도체 금형과 자동차장비 생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90년대 후반, 중국과 동남아기업들이 반도체 금형 분야에 뛰어들자 지 대표는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 때 모 기업의 권유로 휴대폰 힌지(경첩)를 처음 접하게 된다.
당시 힌지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상황. 지대표는 일본 제품을 분석해본 결과, 자신의 기술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고 힌지 독자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리고 드디어 2001년 국산화에 성공한다.
일본 제품의 60% 수준인 가격과 휴대폰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유연성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는 그는 국산화 이후 클릭(폴더) 힌지는 한국이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고 밝히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재 프렉코는 클릭힌지를 비롯해 기어힌지, 쿼티슬라이드 힌지 등 특수 힌지를 생산하며 클릭힌지의 경우 국내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으며 2010년 매출액 211억원, 수출액 810만 달러로 충남을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지 대표는 “기능과 중소기업, 그 둘의 가치를 폄하하는 요즘 세태가 아쉽지만 그런 상황속에서도 기능과 중소기업을 소신껏 선택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꾸준한 노력을 곁들이면 분명 성공할 거라고 격려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도제 기자 @bullmoth> pdj24@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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