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이우환 위작사건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경찰은 압수한 13점이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위조총책과 위조화가를 잡아들이는 등 수사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이우환(80) 작가는 모두 “진품”이라고 반박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법무법인 바른과 손잡고 변호인단을 꾸렸고, 1970년대 말 당시 전시 도록에 작품이 수록된 기록이 있는지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실 이번 사건은 가짜를 그리라고 지시한 사람, 가짜를 그린 사람, 그리고 가짜를 판 사람들의 금전문제로 시작된 형사소송이다. 이우환 작가의 그림을 놓고 위작을 한 사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씨의 대응은 매우 적극적이다. “호흡, 색채, 리듬이 내 것”이라는 이유로 다른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고 진품이라 단언했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한 해 300점 이상, 3년간 1000점에 이르는 작품을 그렸다는 이 씨는 기준작을 늘려 압수품과 더불어 제3의 기관에서 새롭게 검증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향후 압수품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도 고려중이다.
이 씨의 법률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는 “향후 이 화백이 위조범들, 혹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할 수 있는 민사 소송에서는 압수된 13점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형사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이 씨에게 증거보전 청구권이 없기 때문에 새롭게 민사 소송을 진행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우환의 말ㆍ말…=이우환 작가는 일본의 획기적 현대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인물이다.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화가이기에 앞서 이론가다.
이 씨는 1997년 프랑스 파리의 국립 주드폼므(Jeu de Paume)미술관에서 한국작가 첫 개인전을 열 정도로 프랑스 내에서 입지도 탄탄하게 다져왔다. 당시 이 씨가 평생 수집해 온 100여점의 한국 민화들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기증한 사례는 유명하다. ‘이우환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민화들은 프랑스 국립미술관의 몇차례 순회전을 통해 해외에 알려지게 됐다.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고국 대신 프랑스를 선택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난 그는 이론가이자 화가, ‘눈 밝은’ 수집가다.
그런 그가 경찰과 언론에 내놓은 답변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왜 물감과 붓을 이것저것 썼는가 하는 점이다. 이 씨는 그간 언론과 경찰에 “당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림을 그려 캔버스와 물감이 다를 수 있다”, “물감, 붓 등을 그때 그때 다르게 사용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우환 작가의 그림을 주로 취급해 온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 대표가 최근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우환 작가는 ‘철두철미하며 날마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정도로 예민’한 작가다. 그런 그가 그때 그때 아무 붓이나 안료를 썼다는 건 의아한 대목이다. 미술계에 따르면 김환기, 김창열, 박서보 등 대표적인 추상화가들은 대개 정해진 고급 안료와 붓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 씨는 경찰이 내놓은 전문 감정기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모두 부정했다. 캔버스를 일부러 노후화한 점, K옥션 압수품 뒷면에 위조 사인과 위조된 감정서가 있는 점, 일련번호가 겹치는 점 등을 모두 “그런 건 모르겠지만 내가 작가니 나를 믿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감정기관은 왜 위작을 자신할까=1978~1979년 당시 기록들을 보면 이우환 작가는 프랑스, 독일, 덴마크, 벨기에, 일본 등에서 10여차례 넘는 개인전ㆍ단체전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두 차례의 개인전이 있었다. 1978년 4월 현대화랑에서, 1979년 10월 대구 리화랑에서다. 현재 경찰에 압수된 작품들은 당시 한국 전시 도록에는 실려있지 않은 것들이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등 전문기관들은 경찰 감정에 참여해 압수품 12점에 대해 모두 위작 결론을 냈다. 기준작이 된 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과 컬렉터 하정웅 씨가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총 5점이다.
감정기관들은 왜 위작을 자신할까.
경찰 감정에 참여했던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명지대 객원교수)은 “정교한 위작은 작가와 같은 재료를 쓴다. 재료만 보고 위작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새 틀을 사서 헌틀처럼 만드는 것은 위조범들이 하는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라며 “안료의 성분 분석값이 다르다는 것 외에도 캔버스의 인위적 노후화, 헌 나무틀 같은 것들이 위작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라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또 이우환 작가가 “당시 한국 캔버스를 꽤 썼는데, 때때로 문제가 많아서 물감과 캔버스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 것에 대해 “진품의 경우 작가의 말처럼 캔버스가 망가지는 흔적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위작에서는 그런게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위조범들이 그렸다는 그림을 감정한 것 뿐”이라며 “경찰은 위조범들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며, 위작이 걸러져야 작가가 산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 이 외에도 여러 감정 전문가들이 이미 경찰 압수전 작품들을 보고 위작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과학감정을 하지 않아도 안목감정에서 걸러지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주장, 얼마만큼 인정될까=한편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감정ㆍ유통 분야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세미나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프랑스 미술품 감정 전문가들은 감정보증서 발급, 위작 판매자에 대한 처벌 등 관련 법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이들은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제작, 거래 내용의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구에서는 작가의 판단을 최우선으로 한다”던 이우환 작가와 국내 미술계 일부의 주장과는 배치돼 눈길을 끈다.
장 미셸 르나드 프랑스전문감정가협회(CNES) 부회장은 “미술품 거래 시 판매자는 작품의 유형, 특성, 판매 조건 등에 상관없이 진위와 소장 이력, 제작 연도, 기법 등 작품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해야 하며, 관련 법률에 따라 구매자에게 꼭 감정 보증서를 발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시스 푸놀 프랑스 예술법 전문 변호사는 “보증서 첨부 내용물 중 작품을 설명하는 도록에 단어 하나라도 잘못 쓰면 치명적이고, 판매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며 실제 프랑스 법원에서의 판결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또 “거래 이력 등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자료는 판매 후 5년간 보존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안 지키면 6개월 징역형 등의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프랑스에서는 정확한 보증서 발급을 포함한 규정된 감정 및 유통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구매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감정가협회(AAA)의 린다 셀빈 회장은 “미국 감정 평가사들은 작품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