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웨건효과 실종, 왜?

“경쟁자의 밴드웨건이 거리를 떠들썩하게 하면, 도전자의 목소리는 침묵의 나선으로 빠져든다.”

1950~1960년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론으로 꼽히던 ‘밴드웨건 효과’와 ‘침묵의 나선 이론’이 50년 후 한국에서 종언을 고했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떠들어대는 유행 상품과 유력 정치인을 대중이 더 선호한다고 했던 하비 라이벤스타인의 이론이 한국정치에 관한한 설득력을 잃었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이 다수일 것으로 여겨지면 나는 침묵의 나선으로 빠져 타인과의 결속 기회를 상실한다고 했던 노엘레노이만도 가설의 효능을 한국에서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좋은 쪽으로 표심을 몰아주는 밴드웨건 추종자들은 사라지고, 내 의견이 공개된 장소에서 묵살돼도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결속을 시도해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국민이 늘고 있다. 밴드웨건 실종사건은 한국유권자의 성숙도를 말해준다.

착한 강원도민들이 2010~2011년 결행한 ‘선거 혁명’의 와중에 조모(59 춘천시 거주)씨가 보인 모습에서 요즘 유권자들이 이른바 ‘잘 나간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견제하는지 잘 나타나있다.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조사기관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하는 생각이 들고, 누굴 찍겠냐고 물어보면 ‘여당후보 찍는다’고 말한 뒤 빨리 끊는게 마음 편하지요. 기표소에는 나 혼자니까 내 맘대로 찍으면 되고요. 아무리 위에서 ‘좋은 것’이라고 떠들어봐야 인터넷을 보고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 수 있지요.”

2010 지방선거, 2011 도지사 재보선 모두 여론조사에서는 여당후보가 15% 안팎 승리하는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5~8% 차이로 야당후보가 당선됐다.

밴드웨건 효과의 실종은 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는 여당에게 대체로 유리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1996년 15대 총선전 방송사들은 여당인 신한국당이 지역구에서만 155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21석에 그쳤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16대 총선에서도 언론기관 여론조사 결과 여당은 지역구에서만 112석을 얻어 한나라당보다 10여개 지역구를 더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노무현과 이회창, 정몽준이 엎치락 뒤치락 거듭하던 2002년 대선을 계기로 “지금 앞서면 다시 얼마 후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이회창 대세론-경선승리후 노무현의 수직상승-정몽준의 부상-야권지지층 분열에 따른 이회창 상승세-막판 노ㆍ정 단일화 이후 노 후보의 10%포인트 리드가 이어졌는데, 두껑을 열어보니 49대46 노무현의 신승이었다. 선거가 1월에 치뤘졌다면, 이회창이 악재를 조금만 일찍 넘었다면 흐름상 역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표심은 균형감이라는 목표를 향해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정권이 권위적이고 언로가 차단돼 있으면 밴드웨건 효과가 먹혀들겠지만, 정권은 권위적인데 휴대폰, 인터넷, SNS 등으로 언로가 다양하면 ‘침묵의 연대감’, ‘밴드웨건의 역기능’이 강화된다는 새 학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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