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장수연구소

북한에서 김일성의 건강에 젊음을 바친 여의사가 1992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조선의학과학원 동의연구소(일명 김일성 장수연구소)의 연구사로 10여 년간 일하며, 혹독한 훈련과 기막힌 삶을 이어온 건강장수연구소 김소연 소장의 영화 같은 이야기다. 1949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녀는 이듬해 6·25가 발발하자 어머니의 등에 업혀 월북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라 불릴 정도로 영특했던 김 소장은 북한 동의학을 수학, 의료인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동의연구소에서 주체의학을 전수받으며 당 고위간부의 주치의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연구와 임상실험 과정을 거친 그녀는 인간성까지 억압하고, 남존여비 사상이 극에 달한 사회에서 죽음을 건 탈출을 감행해 갖은 고초를 겪다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이처럼 죽음의 문턱에서도 그녀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말아라. 죽을 문(門)이 하나면 살 문은 아홉이다’라는 모친이 어려서부터 해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 말은 김 소장의 평생 좌우명이 되었고, 그로 인해 포기하지 않는 근기(根氣)를 얻었다. 귀순 후에도 배움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식지 않아 동국대 한의학과대학원 경혈학 석사과정에 입학해 다시 의학공부를 시작했으며, 1999년 자연요법이 전무했던 시절 ‘보궁자연요법 연구소’를 열어 자연요법을 전하는데 앞장서왔다.

또한 김 소장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2004~2007년까지 핸더슨 크리스천유니버시티 선교한의학 교수를 역임하며, 단순히 탈북 의사가 아니라 글로벌한 역량을 지니게 되었다. 현재 건강장수연구소를 운영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김 소장은 침, 부항, 물리치료는 물론 약에 의존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생활습관으로 약해진 면역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김 소장은 “대다수의 환자들이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특히 혈압 약은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점점 약물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소장은 “약은 자기 전, 일주일에 두 번만 먹어도 조절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녀를 찾는 환자들은 3개월이 지나면 혈압이 정상수치로 내려가고, 건강한 생활 영위가 가능하다고 한다. “건강도시를 건설하고, 평생건강지킴이 2년 과정 아카데미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는 김 소장. “한 사람의 건강지킴이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건강지킴이로 남은 생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녀의 모습 속에 강한 열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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