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죽음의 계곡 (36)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빅 아일랜드에 도착한 첫날 밤, 8명의 멤버들은 저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우나케어 골프장과 이어져 있는 하프나비치 프린스호텔의 시설이 열악해서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 모두가 사랑 병을 앓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성공적인 전지훈련을 위한 걱정 때문에 밤을 새웠다면 가상키라도 하지만 웬걸, 사랑 병 때문에 첫날부터 날밤을 새우다니…

“아침에 비행기 갈아타기 위해 호놀룰루 공항에 내렸을 때부터 나는 정신이 아득해 졌어. 지난번 여행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기 때문이지.”

숙박부 작성을 핑계로 유한솜을 따돌리고 신희영과 함께 호텔 뒷길을 걷던 중이었던가? 강준호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운을 떼었다. 지난번 단둘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왔을 때의 기억을 함께 되새김해보자는 뜻이었다.

“나도 그랬어요. 가슴이 콩콩 뛰더라니까? 도둑이 제발 저리다는 말이 맞아요.”

“파고다 호텔이었지?”

“아이, 누가 들어요.”

그날, 신희영은 파고다 호텔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윗도리를 벗어던진 채 욕실로 향했었지. 트렁크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욕실로 달려가 원피스를 벗다가… 좁은 목 부분이 머리에 걸려 마치 보쌈 당하듯 자루를 뒤집어쓴 채로 허우적대지 않았던가.

“그날, 머리에 옷을 뒤집어쓰고 수건걸이에 매달려 있던 모습이 무척 자극적이었소. 이제야 고백하는데… 기역자로 몸을 구부린 채 허연 엉덩이를 드러낸 모습에 그만 숨이 덜컥 막히더라니까?”

“몰라요. 당신이 19홀부터 시작하자고 꼬이는 통에 그렇게 되었지 뭐.”

신희영은 강준호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웬걸,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또다시 몸이 근질거리지 않겠는가. 이상도 해라. 평소에는 잔뜩 무게를 잡다가도 막상 태평양을 건너오기만 하면 아랫도리에 반응이 오는 건 무슨 조화일까?

“그날… 당신 오디오가 참 좋았지. 히히…”

“오디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어흐! 그날 내가 제대로 본때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했어, 당신.”

“몰라요. 얼굴에 원피스를 덮어씌우고 뒤에서 그런 식으로 덤비는 법이 어디 있어? 짐승이야, 짐승!”

예로부터 한번 손잡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백번 손잡는 것보다 한번 끌어안고 홀인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도 된다. 문제는 나아지는 것이 무엇일까 인데… 아마 한번이라도 몸을 섞어야 남녀 간에 솔직해질 수 있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한 번 달려볼까?”

“글쎄요. 기회가 되면…”

신희영으로부터 이토록 솔직한 대답을 들었으니 강준호는 잠을 이룰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희영은 제 딸인 유한솜의 눈치를 보며 한승우를 꼬여내기 위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표적이 된 한승우는 유한솜이 그리워서 잠 못 이루는 중이었고, 유한솜은 처음 떠나온 먼 여행이어서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그뿐인가? 매니저 백광돌은 오랜만에 강유리와 밤을 보내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고, 강유리는 매니저와 짙은 포옹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 강준호의 눈에 띌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중이었다. 하긴 둘 사이엔 이미 젖꼭지를 내맡기고, 손가락으로 비틀어주던 전력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다못해 공 과장과 박 대리는 서울에 두고 온 마누라와 애인이 그리워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쨌거나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달은 휘영청 밝기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