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적과의 동침 (22)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남의 꾐에 빠져 잡았든 위압에 못 이겨 잡았든 간에 이왕 떡메를 손에 잡았으면 힘껏 떡을 치고 볼 일이다. 그래야 인절미든 찹쌀떡이든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신 김치 한 사발 놓고 둘러앉아 탁배기라도 마시다보면 꼬인 놈이나 위세 떤 놈이나 몽땅 취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살림살이인 것이다.

“그래, 이왕 떡메를 들었으니…”

유민 회장은 힘껏 떡을 치기로 작심했던 것이다. 어차피 지난 실수 때문에 3,000억 원이란 거금을 쏟아 붓게 된 것을 후회한들 무엇 하랴. 차라리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레이싱사업을 성공시키고, 아울러 국회의원자리라도 꿰차는 편이 정답일 것이라 여겨졌다.

“아버지, 이왕 저에게 레이싱 팀을 맡기려면 머신의 황제라고 일컬어지는 람보르기니를 타게 해주세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스파이더…4961cc의 엄청난 배기량에 자동 6단 기어를 장착한 그런 머신을 타야 뽀대가 난다고요.”

“머신이 무슨 뜻이냐?”

“출발해서부터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이 수초에 불과 한 경주차들을 머신이라고 부른단 말예요. 그런 차를 타야…” “뽀대가 난다고? 뽀대는 또 무슨 뜻이냐?”

“폼이 난다고요, 폼!”

유민 회장과 그의 아들 호성은 장차 꾸려가게 될 레이싱 팀의 현안에 대해 의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서로 간에는 털끝만한 합의점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세대차이도 컸지만 개념과 시각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다. 유호성은 레이싱을 디지털 감각을 통한 전략과 전술로서 무한질주를 시도하는 스포츠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나로그 세대의 대표주자인 유민 회장은 지난 과오를 씻어내는 방편, 또는 국회의원 자리와 물물교환 하는 사업의 일환으로서 레이싱 사업을 벌이고자 했을 뿐이다.

“이 놈아, 정신 차려라. 전화 한 통으로 너를 경찰서 유치장에서 빼준 분이 누구냐? 장차 대통령이 되실지도 모르는 분이지? 그분께서 국산자동차를 몰고 레이싱에 출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뭐가 어째? 람보르기니? 이름부터 더럽게 어렵다, 이놈아.”

“아버지는 모터스포츠가 뭔지 알기나 하세요? 바퀴만 보면 흥분하는 레이서들의 본능을 알 까닭이 있냐고요? 시속 300km가 넘는 스피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질주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런 경기에… 어쩌라고요? 국산자동차를 타라고요? 아들이 경주 도중에 죽는 꼴을 보려고 그러세요?”

경기 도중에 죽어? 유민 회장은 그 말에 섬찟 놀라고야 말았다. 반사적으로 죽음이 떠오르자 그는 또다시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아무래도 너는 자동차 경주보다 골프를 택해야 좋을 것 같구나. 아들을 위험한 경기에 몰아넣는 애비가 나 말고 또 있을까?”

1994년 이탈리아 북부 이몰라에서 열린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당시 최고의 레이싱 선수였던 ‘아일톤 세나’가 경기중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벽을 들이받았다. 결국 핸들이 머리에 관통하여 사망한 이후로부터 현재까지 F1 드라이버만 50여 명이 사망한 것도 사실이다. 어디 F1뿐일까? 지옥의 경주라 불리는 파리 다카르 랠리에서도 사망자가 생겨나고, 국내에서 열렸던 랠리에서도 역시 사망자가 생겨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일반인들이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사망하는 확률보다 자동차 경기 중 서킷에서 사고로 죽을 확률이 훨씬 낮다고 한다. 아일톤 세나의 죽음 이후 국제자동차연맹에서 경주차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결과인 것이다. 섭씨 700도를 넘는 불길에서 12초 동안 드라이버를 보호할 수 있는 노멕스 레이싱 슈트라든지, 목 부상을 막아주는 한스장치, 경기장 응급 의료체계의 비약적인 발전 등이 그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너는 골프선수가 되는 편이 좋겠다. 아니지… 3000억이나 쏟아 붓는 사업에 네가 빠지면 아깝지… 그래도 죽일 수야 없지 않은가? 골프가 좋겠다. 아니야, 골프보다는…”

유민 회장은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프가 좋긴 했으나 아내 신희영에게 아들마저 빼앗기는 꼴이 될 바에야 죽더라도 카레이서로 키우는 것이 정답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