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보호는 기업의 당연한 책무고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의 주요 항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소액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 이유다. 그러나 당위와 현실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 대주주와 소액 주주, 기관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 내국인과 외국인 등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주주들의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으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증시 밸류업을 위한 조치가 자칫 기업 전반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밸류다운’으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 얼마 전 삼성 현대차 등 16대 그룹 사장단이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한 배경이다.

소액주주 보호와 재계 우려 불식 사이에서 고민하던 정부가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상장기업의 합병, 분할, 중요한 영업·자산의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등 4가지 행위를 할 때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시했다. 모든 합병에 대해 외부 평가기관에 의한 평가·공시를 의무화하고, 물적 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 대주주를 제외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기업공개(IPO) 주식을 20% 범위에서 우선 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넣었다. 상법 개정 논의가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켓의 합병 등 상장법인의 분할과 합병을 발단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대안이다. 상법 개정은 자본시장과 관련성이 상당히 낮은 기업 모두에 적용되는 방식이어서 현장의 반발이 컸다. 자본시장법 개정은 100만여 개 전체 법인이 아닌 2400여 개 상장법인만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땜질식 처방’이라며 자본시장법으로의 우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합리적으로 핀셋 규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실제로 이뤄지면 굳이 상법 개정을 안 해도 될 것”이라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둔 점을 감안하면 극적 타협도 가능하다. 정부가 4가지 사례를 제시했지만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더 필요한 핀셋규제 해제가 있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으로의 우회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첫걸음일뿐이다. 소액주주의 불만이 가장 컸던 점들을 해소하면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