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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나목 그리고 삶...‘봄’을 그리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첫 박수근 개인전
유화·드로잉·삽화 등 174점 역대 최다
1962년作 ‘노인들의 대화’ 최초 공개도
가난하고 불우했던 ‘국민화가’ 박수근 아닌
생애를 관통하는 강건한 ‘아름다움’ 주목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관 이래 처음으로 박수근의 첫 개인전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열리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한 작가 박수근을 새롭게 조명하는 이번 회고전에선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 174점이 공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 ‘노인들의 대화’.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차가운 땅에 깊이 뿌리 내린 ‘나목’처럼 참혹한 시절을 견뎠다. 전쟁 전엔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고, 전쟁 후엔 미군부대 내 PX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그곳에서 소설가 박완서를 만났다. 박완서는 “박수근의 전기를 쓰고자 문득 펜을 들었다. 목숨이 값어치가 없던 시절, 예술가의 숭고한 밥벌이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전기는 소설이 됐다. 세상은 ‘나목’의 주인공을 고인이 된 박수근이라고 받아들였지만 작가는 “실화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완서는 ‘나목’ 후기에 박수근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한국적 화가’, ‘이웃을 사랑한 화가’,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하지만 ‘가난하고 불우했던 화가’. 그러다 죽은 뒤에야 한국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화가가 됐다.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빨래터’(1959)가 45억 2000만 원에 낙찰된 것은 당시 미술계 안팎의 화제였다.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국민화가’를 다시 조명하는 회고전은 그가 살아온 시대로부터 시작됐다.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2022년 3월 1일까지·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박완서의 소설에서 따왔다.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박수근의 전시를 준비하며 이전에 해석된 박수근이 아닌 그의 생애와 자취를 따라가고자 했다”며 “박완서의 소설은 미술책보다 박수근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예술을 포기하지도, 생계를 저버리지도 않았던 화가의 삶은 방대한 자료와 작품을 통해 거대한 한 세계를 만들었다. 전시의 규모가 상당하다.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다. 교과서에서 익히 보던 작품부터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유화, 드로잉, 삽화 등 174점이 세상으로 나왔다. ‘노인들의 대화’(1962)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교수인 조지프 리(1918~2009)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 타계 후 미시간대학교미술관에 기증됐다. 2016년 박수근 전작도록 발간사업 때 실물이 확인돼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네 가지다.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등이다. 전시는 박수근의 소년 시절부터 따라간다. 열두 살에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빈센트 반 고흐, 피카소를 보고 화가의 꿈을 키운 소년 박수근의 성장 과정이 출발점이다. 10대 시절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에 이르는 초기작을 보여주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박수근의 시작을 함께 한다.

전쟁을 지나 폐허가 된 땅에서도 박수근은 꿋꿋하게 시대를 견뎠다. 미군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놓지 않았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개인전도 가졌다. 1959년 작품인 ‘쉬고 있는 여인’은 제3회 현대작가초대전 출품작으로, 당시 “서양의 유화 도구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호평을 받았다.

박수근의 그림은 그의 삶을, 서민의 삶을 닮았다. 진솔한 삶의 소재를 그림으로 옮겼다. 그가 화가로서 전성기를 누린 시기는 창신동에서 10년간 살던 시절이었다. 그 때의 그림엔 1950~60년대 사회상과 서울의 풍경, 밟혀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사람들의 삶이 담겼다. 박수근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 절구질하는 아내, 시장에 앉아있는 노인들,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 아기를 업은 소녀.... 참혹한 시대의 평범한 일상은 차분한 색조로, 단순하면서도 과감한 구도로 화폭에 담겨 박수근 그림의 특징을 만들었다. 그는 ‘평범한 아름다움’, ‘성실함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박수근의 작품 세계는 강건했다. 그는 유행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당시는 추상미술이 들어오던 때였으나, 박수근은 추상화를 공부하면서도 자신의 화풍을 고수했다.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려 거칠거칠한 질감을 만들고, 형태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색을 아껴가며 그린 것이 특징”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서구 사조를 작품에 녹여내며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의 방향성과 주류의 접점을 찾아나갔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고전은 박수근의 삶을 관통하며 그의 회화가 가지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끝이 난다. 김 학예연구사는 “박수근은 전후 한국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며 한국적 서양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지평을 넓힌 화가”라며 “그를 불운과 가난에 매몰돼 바라보기 보다 시대와 회화의 경향성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그린 화가로 밀도있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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