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뮤지션들의 삶과 시대적 맥락을 따라가며,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는 음악의 이면을 탐구하는 칼럼형 기사입니다.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뮤지션들의 삶과 시대적 맥락을 따라가며,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는 음악의 이면을 탐구하는 칼럼형 기사입니다.

“노래가 장난이야? 뭐하자는 거야?”…그런데 ‘멋짐’이란 것이 폭발한다…댄스록이 포스트모던 철학으로 구현될 때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모던이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면, 포스트모던은 그 세계를 다시 해체했다” 20세기 중엽, 예술은 더 이상 하나의 진리나 중심을 갖지 못하게 됐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한 이성과 진보의 시대를 약속했던 모더니즘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산업화의 그늘 아래에서 균열을 맞았다. 진보는 파괴를 향해 흘렀고 이성은 합리로 포장돼 더욱 강력한 힘을 얻은 비합리의 폭력을 막지 못했다. 예술 역시 ‘정답’을 말해주는 서사에서 멀어졌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힘을 잃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포스트모던이었다. 포스트모던은 하나의 중심을 의심하고,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며, 서로 다른 감각과 서사를 동등하게 배치하는 데서 출발해 모던이 가지고 있던 ‘단일한 의미의 위계와 보편 진리라는 이름의 신화’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제 예술은 단일한 의미의 체계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고, 정답을 말하는 대신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자유를 얻었다. 고급문
2025.11.29 14:00
송강호 “김광석은 왜 그렇게 일찍 떠났나…” 기억을 울리는 목소리와 선한 미소, 여전히 아른거리는 ‘그’의 노래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인생이란, 삶이란 모두에게 공평하다지만, 가끔은 정말로 뛰어넘을 수 없는 불공평한 재능이 있다. 이를테면 김광석의 목소리, 그 자체처럼. 그의 노래에는 언어로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층위가 있다. 음악적 취향이 어떻든, 세대를 막론하고, 어떤 곡이든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그 순간 공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감성과 기억이 환기되는가 하면 그 안에 끓어오르는 뜨거운 무언가에 가슴이 ‘쿵’하고 묵직하게 내려앉는 감각. 그럼에도 선하고, 부드럽고, 또 아련한 그 목소리에 듣는 이는 누구라도 자신의 감정 혹은 추억 한 조각을 불현듯 꺼내보게 된다. 그의 죽음이 어떤 경위였는지 알아내는 것조차 이따금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김광석의 노래는 그것만으로 완결된 하나의 세계였다. 노래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머물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 누군가의
2025.11.22 14:00
“천재는 27살에 죽는다던데”…이제 곧 70세, 괴물에 가까운 실력, 예술에 잠식당하지 않은 ‘그 사람’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군가 말했다. 젊음이 할 수 있는 일과 나이듦이 할 수 있는 일은 익히 정해져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삶의 이치이고 시간의 흐름이며 인간의 필연이라고. 작가의 글은 세월에 따라 무르익고, 배우의 연기는 시간 속에서 깊이를 얻는다. 노년의 예술은 젊은 날의 열정보다 깊고 완숙은 미숙보다 더 많은 결을 가진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José de la Concordia García Márquez)의 나이 77세에 출간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oria de mis putas tristes, 2004)이 세월의 무게를 품은 문체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절정을 보여주듯, 시간을 버텨야만 닿을 수 있는 예술의 경지가 있다. 그렇기에 때때로 예술은 세월의 풍파를 버티며 더욱 고결하게 완성된다. 하지만 반대로 무대 위의 스타들, 특히 힙합이나 댄스, 록 장르의 대중음악 예술을 다루는 뮤지션은 다르다. 그들의
2025.11.15 14:00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자, 50세 갑작스러운 죽음”…우리가 떠나 보낸, 세상을 바꾼 ‘황제’의 이야기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1993년 1월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로즈 볼 공연장. 지상 최대·최고의 화려한 무대라 불리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Super Bowl halftime show)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가벼운 폭죽과 함께 무대 아래에서 위로 점프하듯 튀어오른 남자. 관중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어떤 이는 비명을 지르고 어떤 이는 눈물까지 글썽인다. TV를 통해 지켜보는 시청자는 무려 1억 3340만명. 모든 시선이 단 한 사람에게 쏠렸다. 그런데 남자는 미동조차 없다. 관중에게 손을 흔들며 환호를 유도하지도, 말을 건네지도, 미소 짓지도 않는다. 춤도 노래도 인사도 없이 멈춰 있는 남자. 그저 정지한 채 모든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견딘다. 1초, 30초, 60초, 90초…공연 기획자들과 백밴드들은 미쳐버릴 노릇이다. 무대는 그가 움직여야만 시작된다. 마침내 2분여가 흐른 시점. 천천히 손을 올려 선글라스를 벗는 남자. 음악이 터져 나오고 관중의 흥분은 기다림의
2025.11.02 13:30
“또 27살에 죽었네” 비쩍 마른 몸, 시커먼 눈화장…중독과 폭력 속 자기파괴로 뒤섞인 천재의 이야기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예술은 때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 우리는 예술이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충만시킨다 믿어왔다.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정을 승화시키며, 삶을 버티게 만드는 숭고한 인간 미학의 결정체라고. 그렇다면 예술은 정말 ‘모두’를 구원했을까. 고통을 노래하는 순간 음악은 빛을 얻고, 무대 위에 선 창작자는 흡사 절대자의 위치로까지 올라선다. 하지만 이따금, 예술은 무대를 밝히는 단 한 사람, 예술가 자신만은 끝내 붙잡지 못한 채 비극을 남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이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한 인간의 삶은 무너져가고 있었지만 그의 음악은 절정에 가까운 완성도로 빛났다. 이 간극은 잔혹할 정도로 냉정하다. 음악은 살아남았고,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일상을 누비며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예술이 삶을 구하지 못한 순간 우리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한다. 그녀는 무엇을 노래했고, 무
2025.10.26 12:00
“벌써 10월 21일, 티셔츠 사러 가야겠네”…오아시스 내한,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영국 브릿팝을 대표하는 밴드 오아시스(Oasis)의 리암 갤러거(보컬)는 이들의 해체 이전 발매된 ‘록 더 박스’(Lock The Box)에 담긴 인터뷰에서 이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오아시스의 전성기는 이미 지났고, 돈 때문에 투어를 하는 것’이니 ‘콘서트 와서 빌어먹을 티셔츠(goods·굿즈/콘서트 기념 상품)나 구입하고 꺼지라’고. 그래.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록 밴드의 과격하고 솔직한 발언에 대한 적절성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곡이 거의 대다수 포진된 1994년 데뷔 앨범과 다음해 발매된 두 번째 앨범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의 곡들이 가진 혁신성과 천재성, 대중음악 경지에 다다른 듯한 수준 높은 완성도를 생각하면 이후 나온 이들의 곡은 다소 진부하고 심심하다. ‘선데이 모닝 콜’(Sunday Morning Cal
2025.10.21 11:30
“금수저 뉴요커 출신, 우주에서 제일 ‘간지’나는 남자들이라는데”…차가운 도시 속 젊음의 무심함, 절망조차 권태로울 때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0:00, 밝은 톤의 C코드/8비트로 가볍게 시작하는 기타1. 0:05, 손 풀 듯 ‘티딕틱’ 타격과 함께 정직하고 산뜻하게 들어오는 드럼. 0:10, 같은 코드 톤을 따서 한 겹 더 올라오는 기타2. 0:19, 곡의 무게추를 잡아주며 저음 멜로디를 깔아주는 베이스 개입. 0:24, 알게 모르게 하이햇을 치던 드럼이 라이드 심벌로 옮겨지며 그 찰나인 0:28, 마침내 터진다. 곡의 시작부터 0:28, 줄리안 카사블랑카스(Julian Casablancas)의 보컬이 공간의 모든 공기를 바꿔놓기 전까지 사운드 세팅은 바로 이 한 순간의 폭발력을 위한 포석이다. 한 번의 강렬한 충격을 위해 퍼즐 조각들이 무심한 듯 툭툭 던져지지만 정확한 자리에 빈틈없이 치밀하게 맞물리고, 짜증 섞인 심드렁한 포효가 만드는 청각적 카타르시스는 정점을 찍는다. 가히 경이로운 설계다. 기타는 기타 소리를 냈고, 베이스는 제 역할을 했고, 드럼은 박자를 깔아줬다. 그게 전부다. 무엇
2025.09.27 23: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오랜 시간 삶을 살고 견디고 겪다 보면 과거에는 부정적으로만 느껴졌던 개념들, 이를 테면 염세와 절망, 포기, 타협, 그리고 적당히 만족할 줄 아는 마음 등이 인간 생에 뿌리로 내려앉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이 때 경험하는 안도와 평화는 젊은 날 가슴을 흔들던 열정과 꿈, 이상에의 욕망보다 근사하고 때로는 보다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패배와 동의어로 느껴지던 이들 단어가 주는 평온은 세계를 미화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패를 부인하지 않으며 상처를 과장하지도 않는, 그저 과도한 열망의 체온을 낮추고 집착이 소모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도 ‘지금, 여기’의 공기는 지켜진다. 아이러니하지만, 비극과 염세가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이들은 삶을 버티는 기술이 된다. 이는 현실의 무게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때 도달하는 조용한 균형이다. 그러므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위안은 도피도, 어쩔 수 없는 타협
2025.09.13 23:30
“연하남 결혼 후 청부살해, 수백억 재산까지 가로챘다?”…악명 높은 ‘미망인’ 코트니 러브, 그리고 ‘신화’로 포장된 폭력과 파멸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어느 해의 1월 1일, 보행로를 지나던 A씨가 우연한 자동차 사고로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정초부터 일어난 이 해프닝에 A씨는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 액땜이라는 운(運)의 등가교환, 혹은 불행의 전조, 아니라면 징벌 또는 하늘의 암시. 하나의 사고에는 각기 다른 의미의 이름들이 붙고 무질서했던 우연은 저마다의 이름을 갖는 순간 예언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라벨링으로 분류되는 순간 사고는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A씨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우연한 사건이 아닌 주술로 작용한다.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지만 불확실성에 취약한 인간은 그 우연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가 말했듯,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패턴까지 발견해내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무작위’라는 공포를 ‘질서’로 견디기 위해서다. 혼돈을 질서로 바꾸기 위해 부여한 ‘등가교환’(액땜)이라는 이름이 붙을 때, 불행은 대가
2025.09.06 23:15
“절친 아내에게 반해 결혼하더니 다시 이혼, 아들은 53층 추락사”…불운했던 이 남자가 ‘신’이라 불리는 이유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0:00~0:01초 1970년 늦은 가을, 어느 대중음악 한 곡이 음악 예술의 위계를 무너뜨리며 고전 클래식의 영역에 도달했다. 듣는 순간 리듬을 각인시키는 ‘터키 행진곡’(Turkish March)의 도입부처럼, 침묵 속 서늘한 진동의 ‘월광’(Moonlight Sonata) 속 첫 화성처럼, ‘레일라’(Layla)는 단 1초 만에 감각을 압도하고 형식을 무화시키며, 통상적으로 우열이 가려져 있는 음악 장르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기타 리프는 선율 이상의 질감으로 존재했고, 그 질감은 고도의 기술과 감정이 뒤섞인 밀도로 듣는 이의 신경(身硬)을 곤두세웠다. 갈망과 절망과 격정이 농축된 7개의 음. 시작과 고조, 응축과 확산이 표현된 이 두 세마디는 ‘기타 인트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클래식 소나타의 미시적 단위(도입-전개-재현)와도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애절함과 방황에서 일시적 안도감을 주는 종결 구조 또한 보편적인 펑크나 하드 록보다는 훨씬
2025.08.30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