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전설의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본명 캐시어스 클레이 주니어)가 사망했다. 1942년 1월 17일 생으로, 향년 74세.

알리는 최근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알리의 대변인 밥 거넬은 당시 알리의 입원 사실을 알리며 “입원 기간이 짧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알리는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앞서 알리는 지난2014년 12월 폐렴으로, 2015년 1월에는 요로감염증으로 각각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알리는 1964년 2월 세계 헤비급 챔피언 리스턴을 TKO로 쓰러뜨리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경기 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한 그의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언이다. 당시 경기에 앞서 도박사들은 7대 1의 비율로 리스턴 승리를 점쳤지만 알리는 승리한 뒤 “나는 왕이다”고 포효했다. 20세기 최고의 아웃복서가 탄생한 순간이다. 특히 1974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열린 ‘철권’ 조지 포먼과 맞붙은 ‘정글에서의 혈투’((RUMBLE IN THE JUNGLE)는 복싱 역사에 최고의 경기로 손꼽히는 대회다. 이 경기에서 알리는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알리는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으며 당시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알리를 백악관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알리는 이후 1978년 레온 스핑크스에게 판정패해 타이틀을 잃었지만 그해 재대결에서 승리하며 3번째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알리는 이듬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했다. 알리의 통산 프로복싱 전적은 56승(37KO) 5패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했다. 1999년 SI와 BBC 선정 세기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됐다. 2005년에는 백악관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자유훈장을 받았다.

알리의 인생은 차별과의 싸움이었다. 그의 고향은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한 켄터키주 루이빌이다. 그가 복싱을 시작한 것도 열두살 때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을 때려눕히기 위해서뎠다. 베트남 전쟁 때 징집 영장이 나오자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 대가로 그는 3년간 선수 자격이 정지되고 챔피언 자격을 빼앗겼다.

그가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 것도 노예에게 부여한 성을 쓰지않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당초 그는 말콤 엑스의 영향을 받아 캐시어스 엑스로 이름을 바꿨다가 이슬람교 운동조직의 지도자인 엘리야 무하마드에게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받아 계속 이 이름을 써왔다.

최근에는 미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 발언을 겨냥해 “무슬림은 자신들의 개인적 의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슬람을 이용하는 이들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일부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이 이슬람에 대해 배우지 못하도록 이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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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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