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봉황산 부석사②에서 계속)

[헤럴드경제=남민 기자] 안양루 앞에 이르면 가파른 25계단이 있고 이 누각 아래로 자세를 굽혀 마지막 8계단을 오르면 석등과 무량수전이 있는 마당이다. 이곳은 극락세계의 영역이다. 그러니 25계단부터 극락세계로 오르는 33개의 계단은 ‘33천’을 의미하는데 좁고 험난하다. 극락세계로 가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조선 중기에 건립한 이 유명한 안양루(安養樓), ‘안양(安養)’은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의미하는 말인데 경기도 안양시(安養市)의 지명도 이 말에서 왔다. 이 안양시 지명은 서기 900년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 휘하에 있을 때 5색 빛깔 구름이 뜬 안양 삼성산에서 고려 개국을 도운 노스님에게 절을 지어주며 안양사라 칭하면서 탄생했다. 필자는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안양시에서 살고 있다.

안양루에서 확 트인 전망을 바라보면 마치 천하를 호령하는 듯 하다. 저 앞으로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이 12겹의 물결을 이루어 부석사를 향해 파도치듯 밀려오는 장관이다. 그래서 이 사찰을 품은 봉황새 닮은 봉황산이 배산(背山), 앞 능선물결이 임수(臨水)이며 좌우 태소백산이 좌청룡 우백호로 풍수지리 명당을 완성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 경치가 그리워 부석사를 찾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천하의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ㆍ1807~1863)인들 이곳을 놓쳤을리가 없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 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네 백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이 자연에 대한 감탄과 좀 더 일찍 와보지 못한 한탄을 섞어 지은 시 ‘부석사(浮石寺)’다.

안양루는 누각임과 동시에 극락세계 출입문 역할을 겸하고 있다. ‘안양루’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알려졌다.

이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마주치는 것이 국보 제17호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 석등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우며 우아하다는 평이다.

팔각을 기본형으로 삼고 네모난 지대석 측면에는 안상을 2개씩 배치했으며 아래쪽에는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 기둥을 받치고 있다. 또 사면에 도드라지게 새긴 보살상과 연꽃무늬 등은 우수한 조각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고 학창시절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국보 제18호, 우선 웅장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일반 사찰에서 만나는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여기선 ‘무량수전’이다. 이 ‘무량수전’ 현판글씨는 공민왕의 친필이다.

‘무량수(無量壽)’는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수명’을 뜻한다. 이곳에는 화엄도량의 서방극락세계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이 소조여래좌상 아미타불(국보 제45호)은 중앙에 있지 않고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모셔져 있다. 소조여래상은 흙으로 빚은 불상이다.

무량수전은 특히 ‘배흘림 기둥’의 전형이라 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배흘림 기둥’은 기둥의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굵어지다가 3분의 1 지점에 이르러 가장 굵고 그 위로 서서히 가늘어 지는 형태를 취한다.

건물은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한국건축의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358년(공민왕 7) 왜구에 의해 불탄 후 우왕 2년(1376) 중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구조수법이나 양식 등으로 볼 때 적어도 13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한다고 하니 자랑거리임에 분명하다.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갈고 단청을 했고, 1969년에도 보수했다.

무량수전 왼쪽 뒤편에는 절 이름의 근원이 된 ‘부석(浮石)’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돌 석(石)’ 자에 ‘점’이 찍혀있는데 이는 누가 왜 새겼는지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바위가 공중부양하지 못하게 고정시켜놓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지나친 것일까.

무량수전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오른쪽 산비탈에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제249호다. 이중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쌓은 전형적인 석탑으로 높이는 526m,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하층 기단과 초층 몸돌의 너비가 넓어 장중해 보인다.

1960년 해체 수리 당시 3층 몸돌 중앙에 얕은 방형 사리공이 발견되었으나, 사리구는 없어졌다고 한다.

눈길 끄는 것은 일반적으로 탑은 법당 앞에 세워져 있는데 이 석탑은 법당 동쪽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산비탈에 있으니 여느 사찰에서 보듯 넓은 마당 가운데 탑을 두고 탑돌이 하는 풍경은 볼 수 없다. 하지만 법당 안의 아미타불이 바라보는 위치에 세웠으니 그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 옆길로 오르면 의상대사가 거처했던 조사당(祖師堂)이 있고 그 처마에 선비화가 자라고 있다. 이 조사당도 국보 제19호로 지정돼 있다. 오르막 오솔길이지만 올라가면 꼭 봐야 할 선비화가 기다리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는 이 부석사도 잃은 것이 있다. 조선후기 불교예술의 대작이라 불리는 목각탱화가 사찰 운영이 어수선할 때 이웃 문경 대승사 극락전으로 옮겨져 현재 그곳에 봉안되어 있다. 무량수전 내의 후불탱화(後佛幀畵)로 조성되었던 것인데 11매의 판목을 잇대어 붙이고 그 위에 본존을 중심으로 각각 지물(持物)도 다르고 자세도 다른 8대보살(八大菩薩), 불제자(佛弟子), 사천왕(四天王)등 총 25구를 조각해 장엄한 부처의 정토세계(淨土世界)를 잘 구현해 내고 있다는 평가다.

나는 비우러 이곳에 왔는데 산은 나에게 그 무언가를 가득 채워준 느낌이다.

(끝)

글ㆍ사진=남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