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익은 보리밭 사이로 프록코트(연미복) 차림의 한 신사가 걸어온다. 한 손엔 검은 모자를, 한 손엔 우산을 들었다. 신사의 뒤론 검은 강아지가 졸졸 따르고, 하늘엔 네마리의 새가 줄지어 날고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화가 장욱진(1917∼1990)의 대표작 ‘자화상’이다. 잘 익은 황금빛 보리밭 때문에 ‘보리밭’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은 화가가 한국전쟁기에 그린 작품이다.
자신이 입어봤던 유일한 ‘정장’인 결혼예복을 떨쳐입은 모습에선 전쟁의 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는 포탄이 쾅쾅 터지고, 사체가 널브러진 참담한 상황 대신 ‘예술가’라는 외롭고 힘든 길을 택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고 있다.
이 그림을 비롯해 장욱진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28일 문을 연다. 집과 가족, 나무 등 일상적 소재를 단순하면서도 밀도있게 그려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