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수부, 세월호 세달 전 매뉴얼 작성 지시

- 담당 과장, 두달 뒤에야 공문 확인 ‘뒷북’

- 부하직원 “매뉴얼 안 만들어도 돼” 보고

- 세월호 사고후 감사원 감사로 적발, 징계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뒤에는 담당 공무원들의 태만한 업무처리와 안전에 대한 안일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장순욱)는 해양 선박사고 매뉴얼 작성업무를 소홀히 해 견책 처분을 받은 해양수산부 A 과장이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해양수산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해양 선박사고 표준매뉴얼을 만들라는 공문이 내려왔는데도 A 과장은 이를 두 달 뒤에야 확인해 업무를 지연시켰다”며 “공무원으로서 성실의무를 위반한 A 과장에게 내려진 견책 징계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양수산부장관이 표준매뉴얼 작성을 지시한 건 2014년 1월 17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세 달 전이었다.

공문에는 ‘2월 7일까지 표준매뉴얼을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명시돼 있었다. 당시 해수부 해사안전국에서 선박사고 매뉴얼 업무를 지휘ㆍ감독했던 A 과장과 B 사무관은 공문접수를 담당하는 주무관의 착오로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해수부는 또 ‘표준매뉴얼 작성 관련 회의를 개최한다’는 공문을 2월 5일 각 부서에 내려보냈다. A 과장은 같은 날 이 내용을 확인했다. 회의에는 주무관이 참석했다. 그러나 주무관은 회의 결과를 A 과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A 과장은 여전히 표준매뉴얼을 작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표준매뉴얼을 2월 28일까지 제출하라는 독촉 공문이 내려왔지만 주무관이 또 보여주지 않아 A 과장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A 과장이 표준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 건 3월 25일이었다. 첫 공문이 내려오고 두 달이나 지난 후였다. 하지만 B 사무관으로부터 ‘표준매뉴얼 작성은 필수가 아니다’는 보고를 받고 뜸을 들였다. 결국 A 과장은 4월 3일에서야 표준 매뉴얼 작성을 지시했다.

그리고 2주 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해수부의 새 표준매뉴얼 작성이 완료된 건 세월호 사고일로부터 네 달이 지난 8월 14일이었다.

감사원은 2014년 5월부터 한 달간 해수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이같은 비위행위를 적발하고 A 과장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3월 A 과장에게 견책처분을 내렸다.

A 과장은 “주무관의 착오로 공문을 보지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2014년 2월 5일 표준매뉴얼 작성 관련 회의를 개최한다는 공문을 확인했다면 적어도 이때부터라도 표준매뉴얼 작성에 착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공문을 공람하지 않은 주무관과 ‘표준매뉴얼은 반드시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한 B 사무관의 잘못을 지적하며 부하 직원들을 제대로 관리 못한 A 과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해수부는 해양 선박사고와 관련해 기존의 실무매뉴얼을 활용해왔지만 이마저도 부실했다.

대규모 재난 발생시 모든 사항을 총괄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역할이 해수부의 실무매뉴얼 ‘위기관리 기본방향’ 부분에는 빠져 있었다. 오히려 재난이 발생하면 대중의 관심을 돌릴 별도의 기사 아이템을 개발하라고 명시했다.

또 해양 선박사고 발생시 해양수산부나 해양경찰청이 아닌 소방방재청에 인명구조 총괄 임무를 부여하는 내용도 있었다.

재판부는 “A 과장이 이처럼 실무매뉴얼에 문제가 있는데도 보완을 하지 않아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A 과장은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등 30년 넘게 성실히 공무원 생활을 해온 점을 참작해달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씨의 비위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아 견책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