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면 어때? 출퇴근 편하고 마음만 편하면 그만이지.”

최근 인천 역세권에 허름한 아파트를 산 지인의 표정은 밝았다. 천장 뚫린 전셋값과 콧대 높은 분양가의 ‘아파트 공화국’을 달관한 말투였다.

그의 아파트는 8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화장실과 벽지에 눅눅한 곰팡이 흔적이 있었지만 입지가 뛰어나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깝고 생활인프라도 풍부하다. 거액 대출을 낀 이른바 ‘은행집’도 아닌 데다, 서울 출퇴근이 편해 탁월한 선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울에서 1억원 미만에 거래된 아파트 이야기는 그래서 더 놀랍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4억을 넘어선 시기에 의심부터 앞선다. 영등포구, 강서구, 노원구, 구로구 등 서민이라면 엄두도 못 낼 역세권에 ‘보물’은 숨어 있었다.

뉴스를 접한 한 누리꾼은 “집주인이 기부천사”라는 의미심장한 댓글을 달았다.

전세난에 떠밀려 경기도로 눈을 돌리거나 집주인의 요구에 은행에 재차 손을 벌려야 하는 세입자의 솔직한 심정이 느껴졌다.

2000년대 초반 아파트 경매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서점에는 집으로 돈을 벌었다는 부자들의 실전투자 가이드북이 넘쳐났다.

‘노를 젓는’ 이들은 목돈조차 없는 무주택자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목돈은 없더라도 ‘가진 돈’은 있어야 그나마 출발선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책값 푸념으로 끝났다.

‘살(buying)’ 집이 아닌 ‘사는(living)’ 집이다. 가격이 싸거나 낡은 아파트라도, 남의 집이거나 은행집이라도 주거만족도가 높으면 그만이다.

전세가율 80% 시대에 ‘머물기’를 택한 수요자가 늘었 다는 소식도 궤를 같이 한다. ‘불안’보다 ‘안정’으로 서민은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

꿈은 멀어지더라도 행복은 가까이 두고 싶어서다.

집을 보는 안목, 이제 돈보다 삶의 질이다.


and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