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산신청 노인들… 男 ‘사업형’, 女 ‘생계형’ - 카드빚에 병원비까지… 가족해체로 이어져 - 여생이라도 편하고픈 노인들 파산 신청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1960~70년대 국가의 집중 육성으로 중공업 분야가 꽃을 피우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조선ㆍ철강산업 등에 몰려들었다.
20대의 혈기왕성했던 A(75)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작은 철강 제조업체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한 A씨는 30대 중반에 직접 철강회사를 차리고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하지만 사업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실적은 부진을 거듭했고 어음부도에 공사미수금까지 쌓이면서 사업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부모님 재산까지 끌어다 바닥난 재정을 메워보려 했지만 결국 다 탕진하고 말았다.
어느 덧 70대 노인이 된 A씨에게 남은 건 60억원에 달하는 빚과 작은 월세방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아내는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세 자녀들도 아버지의 사업실패 후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50여만원의 연금으로 홀로 생활하던 A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할 길이 없어 뒤늦게 법원 문을 두드렸고, 올 초 서울중앙지법은 A씨에게 파산 선고를 내렸다.
100세 시대에 이처럼 황혼에 파산하는 노인들이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A씨처럼 남성의 경우 주로 사업실패로 인한 채무 때문에 파산에 이른다면 여성들은 사별이나 이혼 후 혼자 생계를 책임지다가 빚더미에 내몰리고 있다.
3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세 자녀를 홀로 키우던 B(63ㆍ여)씨는 지인 소개로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큰 빚을 졌다. 식당일을 하며 어떻게든 갚아보려 했지만 빚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여기에 유방암 진단까지 받아 식당에도 못 나가면서 B씨의 수입은 뚝 끊겼고 병원비 부담만 더 늘었다. 결국 법원은 올해 1월 B씨에게 파산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남성의 경우 사업 실패나 퇴직 후 창업 실패로 파산신청을 해오는 ‘사업형’이 많다면 여성들은 홀로 경제활동하며 진 카드빚이나 치료비로 인한 ‘생활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차이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의 파산 사건을 심리하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린다고 법원은 말한다. 남성들이 바깥에서 경제활동을 오래 해온 만큼 채무가 늘어난 경위와 살아온 과정을 전부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고령인 점도 법원이 파산 신청을 받아들일 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제활동을 해서 빚을 갚을 여지가 아직 충분한 젊은이는 엄격하게 심사하지만 노인의 경우 노동력이 떨어지고 취업도 어려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파산부 관계자는 “노인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경비나 식당일도 겨우 생계비를 마련하는 수준”이라며 “고령인 것만으로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게 어느 정도 소명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속포기보다 파산ㆍ면책 절차가 비교적 간단해 남은 생이라도 편하게 살고픈 노인들의 파산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