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박영서 특파원]중국 서남부 쓰촨(四川)성을 기반으로 막강한 힘과 재력을 휘둘러온 류한(劉漢) 한룽(漢龍)그룹 회장의 재판이 중국 사회에 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쓰촨방(四川幇)의 대부이자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저우융캉(周永康)과 관련된 부패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류한의 흥망성쇠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쓰촨성 최대 민영그룹인 한룽그룹의 회장 류한은 지금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셴닝(咸寧)시에서 재판을 받고있다. 지난 20년 동안 폭력조직을 거느리며 청부살인, 갈취, 폭행, 공갈, 사기 등을 저지른 혐의다.

그러나 후베이에서 멀리 떨어진 쓰촨성 시골마을의 노천 찻집에 모인 고향사람들의 생각은 다소 다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있다는 잔쉬는 “그는 우리 고향에 균형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

올해 48세의 광산재벌 류한은 중국을 넘어 호주,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 네바다주까지 진출했다. 이 사업들은 수십억달러의 가치가 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류의 재산도 갈수록 불어났다. 중국 부자들을 연구하는 후룬리포트는 2012년 그의 재산이 전년보다 28% 늘은 10억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자산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6년전 류는 지진으로 무너진 쓰촨성에 자신의 이름으로 희망소학교를 지어주였다. 사람들은 그를 중국에서 가장 관대한 박애주의자로 꼽았다.

물리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쓰촨성 광한(廣漢)의 남쪽에 자리잡은 목조주택가에서 자랐다. 지금은 의류상점, 하드웨어판매점, 국수가게로 붐비는 시장으로 변해있다.

지역주민 양슝은 젋은 시절의 류한을 기억한다. 그는 “류한이 20대에 금속거래를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10년 WSJ에서 류한이 얘기했던 것과 같다. 당시 인터뷰에서 류한은 “나는 다른 수많은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근면과 사회의 지원을 통해 차근차근 행운을 만들어나갔다”고 강조했다.

류한의 성공은 고향 광한에선 찬탄의 대상이었다. 그의 벤틀리 , 벤츠, 람보르기니는 삼륜차가 덤프트럭과 경쟁을 벌이는 고향마을 도로에서 분명히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체포되기 몇개월 전에는 약 7000만달러에 달하는 에어버스 제트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도 세 차례나 역임했고,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자신감도 강했다.

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당신은 이해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중국이 오랜 기간동안 법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라는 점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그는 허베이 셴닝 중급인민법원 법정에 서서 법의 심판을 받는 지경이 됐다. 그는 진술에서 “혐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내 인생은 끝났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과의 관계를 즐겼다. 지난 2013년 3월 그가 체포됐을 때 다른 곳이지만, 같은 시간에 저우융캉의 쓰촨성 인맥들은 줄줄이 잡혀가고 있었다.

광한을 흐르는 야쯔허(鴨子河) 강변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고향사람들은 뭔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고향주민 잔쉬는 “류한은 우리 고향에서는 ‘전설’이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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