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 사과를 받는데 도망가야하죠?"

영화 '한공주' 속 여주인공 한공주의 대사다. 이 한 마디는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의 가슴을 관통하게 만든다. 이 대사가 울림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배우 천우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공주'(감독 이수진)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써니'의 본드녀로 유명한 천우희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가뿐히 던져버렸다. 광기어렸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을 향해 등 돌린 주변시선에 상처받은 여린 한공주만 있을 뿐이었다.

"오디션을 보고 '한공주'에 캐스팅 됐어요. 되기도 전에 혼자서 '이건 내가 하겠구나. 하고싶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더 열심히 본 것 같아요."

"시나리오가 와닿았던 건 사건 중심으로 펼쳐진 게 아니라 한 아이의 감정에 중심을 두고 주변 인물들을 가려가는 점이었어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갔다면 감정적이거나 고발성 영화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오로지 한공주와 그 주변 인물들의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천우희는 '써니'의 본드녀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강한 이미지가 박혀있던 탓에 '한공주'를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써니' 이미지가 세다고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건 이미지에 불과하니까 한공주를 어떻게 표현해내는가에 따라서 '써니'의 본드녀로 남을 수도 있고 '한공주'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께 그저 '저를 믿어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앞으로의 이미지는 배우의 몫인 것 같습니다."

한공주는 성폭행을 당한 후, 고등학교를 강제전학 가야했고, 그 곳에서도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생활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한공주에게 등을 돌린다. 어느 누구 하나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는 가여운 인물이다. 보통 배우들이 연기할 때 자신이 맡은 역에 몰입해 동일시하기도 한다. 천우희는 한공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연기했는지 궁금했다.

"감정에 젖어 우울해있기보다는 그것을 이겨내려고 했어요. 한공주도 그런 사건이 있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감정의 변화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감정들을 잘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죠. '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바닥에 눌러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않았을까'라는 제 생각에 현장에서 연기할 때도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주로 '이 인물이 나라면 어땠을까'에서 출발을 해요. 그래서 동일시 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을꺼예요. 제 생각과 몸으로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역과 저를 분리할 수가 없죠. 그러나 이 인물이 나에게 갇혀 잘 표현되지 않을까봐 균형을 맞추려고도 노력했어요."

유독 추웠던 겨울날의 촬영, 수조세트 촬영, 한공주의 심리적 변화를 쫓아가야 하는 감정 연기, 천우희에게 '한공주' 촬영은 어느 하나 쉬워보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천우희는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처음으로 느꼈던 혼란스러움'이라고 말했다.

"찜질방 신이 있었는데 그 때 기분이 참 이상했어요. 내가 스스로 컨트롤 잘해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됐었어요.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당황스러웠어요. 연기를 해오면서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처음이었어요. 어떻게 해야될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한공주가 나에게서 떠났나'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감독님도 보고 바로 제 상태를 아시더라고요. 면담을 하긴 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기보다 쉬는 시간을 가지고 야식 먹으면서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후에 마음을 잡고 금방 돌아와서 연기를 해내갔는데 그게 저에게는 참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극중 한공주는 출중한 노래실력과 기타솜씨를 가지고 있다. 이에 천우희도 촬영 초기단계부터 기타를 배워야했다. 천우희가 노래부르는 신은 안타까운 마음은 잠시 접고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저는 기타를 쳐본 적이 없었어요. 곡도 굉장히 늦게 나오고 여러번 바뀌다보니 마음이 초조하더라고요. 코드를 알려주셔서 코드만 열심히 연습했어요. 하하. 기타와 아카펠라는 영화 초기단계부터 촬영 때까지 연습했죠."

천우희는 인터뷰 내내 '한공주'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배우. 영화가 많은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이수진) 감독님은 디렉션을 많이 안하세요. 다시 갔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잘 안하시는 편이예요. 그런거에 대해서 의구심이 든다거나 '왜 그렇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이유는 영화촬영 전 감독님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나눴고, 약속했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촬영했기 때문이죠."

2004년 영화 '신부수업' 단역으로 데뷔해 현재 2014년까지 꾸준히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천우희. 그는 연기할 때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어느정도 조절하는 것이 배우의 미덕이라고 강조했다.

"자신감은 중요한데 자만심에 빠져 연기하거나 진정성만 믿고 연기하는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 이 두가지가 조화로워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머리든, 몸이든, 연기기술이든, 내면이든 이것도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뤄야하는 것 같아요. 배우들한테 다양한 경험을 하고, 보고 들으라고 하는 것도 다양하게 발달시켜야 연기가 확장되기 때문이죠. 저도 이 부분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예요."

천우희는 마지막으로 오는 4월 17일 개봉을 앞둔 '한공주'를 보는 자신만의 관전포인트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공주'는 두 번 봐야하는 영화예요. 처음에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공주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짠하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열 일곱살의 공주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