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받았지만 받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외무 심의관은 16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 차별철폐위원회의에 출석해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 혹은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22일 일본 시마네(島根) 현의회는 한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케시마(竹島)의 날’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그리고 독도 문제까지. 역사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집권정부(자민당)의 유력파벌이자 아베 신조(安倍 晋三)이 이끄는 세이와(淸和)파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일정 정도 정당성이 있었으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대동공영론을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일본은 왜 과거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양국 역사교육학자들은 “민족주의와 애국심 고양을 역사교육의 목표로 인식하는 인식 문제”가 내재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자민족 중심의 배타적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교육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나아가 전 세계 각국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 [자료=게티이미지]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 [자료=게티이미지]

일본의 역사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역사인식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정부는 제도를 통해 사회의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55년 체제’라 불릴 정도로 1955년 창당 이래 4년 1개월을 제외하고 계속 집권을 유지한 일본의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의원들은 구 일제시대 귀족세력이었던 ‘화족’(華族) 출신이 대거 포진해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소속된 세이와(淸和)파는 메이지(明治)유신을 이끈 군국세력 중 하나인 조슈번(長州藩)의 후손들로 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아베 자신도 조슈번의 후손입니다.

세이와파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1957년 2월~1960년 7월 역임)가 형성한 파벌로, 이념적으로 일본의 독립, 군비확장,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매파로 분류됩니다. 세이와파에 속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에도(江戸)시대 당시 조슈번과 대립했으나 ‘삿초(薩長)동맹’으로일본제국 해군을 장악한 사쓰마번(薩摩藩)의 후손입니다. 조슈번은 이 동맹으로 일본제국 육군을 장악했습니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일가들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이들에게 있어 역사는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국민(신민)들의 복종을 종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일본 근대사상과 대중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90년 공표된 ‘교육칙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칙어는 일본 국민들에게 일왕에 대한 충성을 다할 것을 강조한 윤리강령이었습니다. 특히, 1940년 각의결정으로 ‘기본 국책 요령’이 된 ‘팔굉일우’(八紘一宇ㆍ일왕이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뜻)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사상교육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다’는 정신으로 형성된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神風)의 탄생배경에도 이러한 사상교육이 있습니다. 조선침략 역시 ‘팔굉일우’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일본제국은 조선 식민지화 이후 ‘황민화’(皇民化) 정책으로 일왕에 대한 조선인들의 복종을 강요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일본제국의 ‘식민사관’을 형성한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후손들이 전쟁범죄를 인정할 수 있을까요? 1996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매춘부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느냐”며 “객관적으로 강제연행을 당했다는 증거를 대봐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퍼부은 자민당의 이타가키 다다시((板垣 正) 역시 A급 전범인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 征四郞)의 차남이었습니다.

역사란 과거의 일을 조사하거나 해석하는 현상으로,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이 개입됩니다. 때문에 세계의 어느 국가들도 일관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당시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한 존재였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깼죠. 일본의 역사왜곡의 근원과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이들은 ‘역사’를 무엇이라고 인지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한일의 ‘자민족 중심적인 역사인식’으로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는 역사논쟁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