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법원이 흡연과 암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 및 담배가 결함있는 제조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추진 중인 담배소송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공단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공단은 이르면 다음주 초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소송을 추진 중이다. 현재 소송을 대리해 줄 변호사를 모집하고 있으며, 변호사 선정이 완료되는대로 구체적인 소송 내용을 협의한 뒤 법원에 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소가는 537억여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높은 금액을 청구했을 경우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 부담이 커져 일단 일부만 청구한 뒤 추후 금액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공단이 소송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에 패소한 폐암환자 7명과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 판단이 있다.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법 민사9부는 몇년전에도 흡연자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폐암 중 소세포암’과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낱같은 여지를 남겼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공단은 암예방연구 자료를 통해 이 환자들과 비슷한 유형의 환자 3400여명을 골라냈다. 이들의 진료비가 537억원이다.

일반적인 담배 소송의 쟁점은 3가지. 흡연으로 인해 폐암을 얻게 됐는가, 담배회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가, 담배가 결함있는 제조물인가 하는 것이다. 이번에 폐암 환자들이 패소하면서 해당 쟁점에 대한 공단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또 흡연 피해자들의 피해가 1차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단이 이들을 위해 지출한 진료비라는 2차 피해를 입증하기란 더더욱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판사는 “공단의 담배 소송은 흡연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물론이고, 그로 인한 공단의 피해까지 입증해야 한다”며 “수천명의 질병 원인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피해를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공단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빅데이터 및 연구 자료가 있어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물론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달라지고 있고, 담배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규명 또한 발전하고 있다. 소송이 제기될 경우 향후 몇년에 걸쳐 이뤄질 공방과정에서 그러한 변화가 반영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미국의 사례는 그 대표적인 본보기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담배 소송이 제기된 해는 1954년.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흡연 피해자들은 줄곧 패소했다. 하지만 담배회사가 금지된 화학첨가물을 담배에 사용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풍향은 뒤바뀌었다. 1992년 페트리샤 헨리라는 흡연자가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승소하더니, 연달아 흡연자의 피해를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1998년에는 미국 46개 주정부와 담배회사들 간에 주요합의(master settlement agreement)를 맺기도 했다. 담배회사들이 주정부에 2060억 달러를 지급하고 금연운동 단체를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반면에 2003년 프랑스 최고법원과 2006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흡연자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