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사령탑에 오른지 14일로 한 달이다. 지난 12일부터 김 위원장의 직함은 비대위 위원장이 아닌 비대위 대표가 됐다. 연쇄탈당과 내홍으로 위기에 빠진 더민주를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김 위원장의 한 달을 되돌아봤다.
처음부터 거침이 없었다. 문 전 대표는 14일 김 대표의 영입발표 후 기자들과 호남선대위원장을 추가로 영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당시 “나는 단독 위원장을 한다는 전제 하에서 수락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후 더민주에서는 더이상 공동위원장 영입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영입 직후에는 그의 당적변경을 문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협력했다는 것이다. 이노근 새누리 당의원은 “이번 사태를 보고 참으로 정치적인 비열함을 느꼈다”며 “때만 되면 이 당 저 당,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역대 정권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 전력에 대한 공격도 이어졌다. 주로 야권이었다. 지난달 26일 한상진 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북도당 창당대회에서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군부정권이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분을 모셔서 60년 전통 민주당을 송두리째 갖다바쳤다”고 김 위원장을 비판했다.
“지금까지 국보위 뿐아니라 어떤 결정을 해 참여한 일에 대해 스스로 후회한 적 없다”던 김 대표는 국보위 전력에 대한 자신의 언급을 거론하며 “그 때 간단히 말씀을 해서 상당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보위가 성립된 과정에서 나타난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저 자신도 철저하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문에 제가 국보위에 참여했던 전력이 광주 여러분들에게 참 정서적인 문제를 야기시켜 ‘잘못된 것을 왜 잘못됐다고 고백하지 않느냐’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광주 분들께 굉장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김 대표는 같은 달 31일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김 대표는 원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당장악력을 높여갔다. 지난달 29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어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과 북한인권법을 처리하기로 한 여야 합의가 파기를 주도한 것이다. 그는 이날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및 북한인권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 무산과관련, “(새누리당이) 공직선거법에 파견법을 또 연계시켜서 처리 안해줄텐데 뻔한 속셈에 왜 말려드느냐”고 했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기존 더민주와 다른 입장을 내놔 논란을 빚었다. 지지층 외연을 넓히기 위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김 대표는 이달 9일 경기 파주시 육군 9사단의 한 부대를 찾아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김 대표가 ’궤멸’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논평을 내고 “김종인 위원장이 자신의 북한 궤멸론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는 것은 햇볕정책에 대한 정면부인”이라며 “김종인 위원장은 위험천만한 궤멸론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김 대표가 더민주의 사령탑이 된지 한 달. 그가 비대위 대표로서 당을 장악한 이후, 탈당행렬이 잠잠해지고 당의 지지율 역시 상승세를 탔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추가탈당행렬의 키를 진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그의 영입 이후 잔류를 선언했다. 안철수 의원을 시작으로 18명에 이르던 더민주 탈당행렬은 22일 박지원 의원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빠저나가던 더민주의 당 지지율도 김 대표의 영입으로 다시 하락세를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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