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대중문화시장의 보고로 떠오른 중국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큰 시장이 됐다.
영화계에선 ‘찰리우드’가 떠오르고 있다. 찰리우드는 차이나(China)와 할리우드(Hollywood)의 합성어로 중국이 전세계 영화시장 점유율에서 미국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 영화산업은 2년 연속 극장 총관객 수 2억명 돌파라는 성장을 이뤄냈지만 내수시장 포화 등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해외시장 특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시장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 시장은 방송가와 가요계에도 ‘새로운 출구’가 됐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접어들며 국내 엔터시장은 포화상태를 맞았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현재 인구수에 비해 채널과 콘텐츠의 제작 편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며 “업계에선 우스갯소리로 내수 엔터시장이 살아나려면 인구수가 8000만 명이 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국내 로컬 수요로는 이미 한계가 왔고,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활기 띄는 한중 합작 프로젝트=충무로는 꾸준히 한중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콘텐츠와 제작 노하우를 가진 한국 인력과 중국의 자본과 시장이 만났을 때 시너지가 나오리란 계산에서다.
CJ 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중국판 ‘수상한 그녀’인 ‘20세여 다시 한번’으로 중국 박스오피스 수입 3억6500만 위안을 돌파하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중국에서 개봉한 한ㆍ중 합작 영화 중 최고 성적이다. 이에 고무된 CJ 엔터테인먼트는 ‘써니’의 중국 버전 제작도 준비 중이다.
CJ 엔터테인먼트가 추진하는 프로젝트 가운데는 ‘접속’, ‘텔미썸딩’의 장윤현 감독이 연출하는 ‘평안도’도 있다. 또 ‘타워’의 김지훈 감독은 ‘강호출산기’를 준비하고 있다.
CJ E&M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프로젝트들을 제외하고 현재 개발 중인 프로젝트는 훨씬 많다”면서 “대기업 차원 뿐 아니라 1인 제작사들의 합작 프로젝트 등 중국과의 교류는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중 영화 교류는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국내 투자배급사 NEW와 중국의 화책미디어는 지난해 10월 합작사 화책합신(HUACE & NEW 華策合新)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화책합신은 NEW와 중국의 화책미디어가 50대 50으로 출자한 합자법인이다.
화책합신은 한국과 중국 두 감독이 각각 연출하는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마녀’를 준비 중이다. 한국판 ‘마녀’는 김대우 감독이, 중국판 ‘마녀’는 천정다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마녀’는 NEW와 화책미디어가 기획ㆍ개발단계부터 함께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한국판과 중국판을 제작하는 첫 사례로 눈길을 끈다. 아울러 한효주가 주연한 ‘뷰티인사이드’, 손현주의 ‘더폰’의 중국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중국 자본의 직접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알리바바 픽쳐스는 한류 스타 김수현의 차기작 ‘리얼’에 대한 투자와 함께 중국 내 독점 배급권을 갖기로 했다. 알리바바 픽쳐스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가 영화 제작 및 투자 배급을 위해 설립한 영화사로, 설립 후 첫 투자 작품으로 ‘미션 임파서블 5-로그네이션’을 선택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 수십년 풀지 못한 드라마 시장의 난제…중국이 해결사=지난해 연말부터 국내 드라마 시장에선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드라마 시장의 고질병으로 꼽혔던 ‘쪽대본’ 난제가 풀렸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시장 때문이었다. KBS 글로벌센터 콘텐스사업국 관계자는 “중국에서 TV에만 적용됐던 사전심의제가 인터넷으로 확대 적용돼 국내 드라마의 경우 사전심의를 받기 위해 전작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업계에선 환호할 만한 일이지만 지난 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헛웃음이 나올 법하다. 쪽대본에 밤샘 촬영이 이어지고, 실시간을 방불케하는 제작의 연속이었던 긴 시간들이 중국 시장 공략이라는 이유로 체질개선에 돌입했다는 점 때문이다.
한 방송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했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 매출을 올릴 수가 없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공략해야 하는데, 중국시장의 규제로 수출길이 막힌데다 수출을 해도 불법 콘텐츠가 한 차례 돌고난 이후라 온라인 재생수가 예전과 달리 뚝 떨어졌다”며 “드라마의 경우 한류배우 등을 캐스팅한 대작위주로 사전제작형태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선 드라마 방송 6개월 전에 프로그램 방영 계획을 보고, 3개월 전에 드라마를 심의한다.
대표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영애 송승헌 주연의 SBS ‘사임당 더 허스토리’가 지난 8월부터 촬영에 돌입했다. 방송 예정일은 올 9월이다.
‘상속자들’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 송중기가 만난 ‘태양의 후예’(KBS2)도 지난 7월부터 촬영을 시작, 오는 23월 방송을 앞두고 있다. 김우빈, 수지의 ‘함부로 애틋하게’(KBS2), 아이유 이준기의 ‘보보경심:려’, 정일우 안재현 박소담의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등이 100% 사전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변화엔 잡음도 따라왔다. ‘사임당 더 허스토리’(SBS)는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주연배우 간담회와 현장공개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총 7개국에서 250개나 되는 해외 언론이 참석했다. 100% 사전제작 드라마로 당시까지만 해도 전체적인 스토리뿐 아니라 티저 영상 하나조차 공개하지 않은 자리였음에도, 이 현장은 성대한 축제를 방불케했다. 현장에 참석한 국내 관계자들 사이에선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만든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콘텐츠가 내수시장에서의 성공과 한국 시청자에 대한 배려를 고민했는지조차 의문이 드는 현장이었다.
방송 중인 ‘무림학교’(KBS2)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청춘액션극을 표방, 다국적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무림학교’ 역시 현지 진출을 위해 사전제작됐다.
문제는 지난 19일 방송분에서 비롯됐다. 중국 재벌가의 아들로 나오는 왕치앙(임홍빈)과 한국인 학생 윤시우(이현우)가 중국 돈을 태우는 장면이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도마에 올랐다. ‘무림학교’ 관계자는 이에 “중국이나 중국 문화를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재방송과 VOD 등에서 해당 부분 영상을 삭제, 일각에선 ‘중국 눈치보기’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 한중 합작 아이돌, 음원유통사 계약으로 현지공략=K-팝 시장에도 중국은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다. 대형 가요기획사들은 중국 온라인 매체와 음원 독점 유통 계약을 맺고, 한중 합작 아이돌그룹 제작으로 수월할 현지 진출 공략 방식을 취하고 있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 한류 아이돌그룹을 대거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인 바이두와 음원 독점유통 계약을 맺었고, 올해에는 중국 현지에 조인트 벤처를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YG엔터테인먼트도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와 음원 독점 유통을 계약한 바 있다. 최근 ‘4대 기획사’로 부상한 FNC엔터테인먼트도 지난해 중국 민영기업 쑤닝유니버셜미디어로부터 330억 원 가량의 투자를 유치해 중국 진출을 가시화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아이돌이 중국 현지 매니지먼트와의 파트너쉽을 체결해 중국 내 활동을 용이하게 하려는 전략도 포착된다.
인기 걸그룹 EXID가 소속된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프로젝트바나나와 EXID의 중국 매니지먼트를 위한 MOU를 맺었다. 프로젝트바나나는 중국 최대 재벌기업인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의 아들 왕쓰총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 또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빅스도 중국 최대 에이전시인 CN BLESS와 파트너쉽을 체결해 중국 활동의 길을 열었다.
처음부터 한중합작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선보이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중국의 위에화엔터테인먼트와 상호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오는 2월 양국 멤버로 구성된 한중합작 걸그룹 ‘우주소녀’를 데뷔시킬 계획이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해외발 악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 목격했다. 앞서 JYP엔터테인먼트는 대만 출신 가수인 쯔위가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모습이 포착되면서 중국 여론의 급격한 등돌림을 마주했다. 중국시장을 저버리지 못하는 소속사가 바로 사과 성명을 내며 큰불은 껐지만, 여전히 국가 감정 간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고승희ㆍ김기훈ㆍ이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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