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폴 포츠’ 황영택 성악가
정상인도 힘든 극고음 노력으로 극복 나눔재단 등 난치병환자 돕기 앞장도
“ ‘네순도르마’는 제가 부를 수 있는 음역대가 아니었어요. 1주일동안 연습하고 또 연습했죠.”
지난달 15일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폴 포츠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도르마’를 듀엣으로 불러 감동을 선사한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48) 씨는 몸의 3분의 1만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낸다.
성악가들이 단단한 두다리로 바닥을 누르고 단련된 복근으로 소리를 깊게 끌어내는 것과 달리 그는 휠체어 위에서 상반신을 곧추세운 채 가슴과 목, 머리를 통해 어렵게 소리를 만들어낸다. 장기가 마비돼 배의 호흡을 느낄 수 없는 터라 복대와 혁대로 뱃심을 받혀낸다.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마지막 마디 ‘빈체로(승리)’에선 하이 b까지 올라가는 극고음으로 그로선 무리였지만 그는 해냈다.
26살의 청청한 젊은 날, 건설현장에서 한순간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황영택 씨의 지난 20여년은 도전과 극복의 삶이었다. 사고 후 6개월동안 내리 술만 퍼먹다 갓 돌된 아기의 눈동자를 보고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기 이전에 아빠란 사실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몸을 단련하는 게 중요했다. 그는 가장 격렬한 운동인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땀을 흠뻑 흘리면서 움직이는 동안에는 고통도 다 잊을 수 있었어요.” 그는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선수로 아시안 게임에선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의 세계 랭킹은 30위. 테니스를 치면서 휠체어 사중창단으로 활동했던 그는 성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37세의 나이에 수능을 공부하고 대학 문을 두드렸어요. 실기에선 제가 당당히 수석을 했습니다.”
대학 교수들은 당황했다. 의자에 앉아 부른다는 게 어떤 건지 교수 스스로 체험학습을 하기 시작했다. 성악가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몸의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고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볼펜을 물고 연습했다.
황 씨는 지난해 7월 지인을 통해 삼성화재 교육프로그램에 강연자로 초빙됐다. 그는 담담하게 불우한 가정환경과 사고, 장애자로서의 삶을 얘기하며 노래를 들려줬다. 그의 강의는 입소문을 탔고 얼마 후 삼성전자 간부들 앞에 서게 됐다.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보시던 분들이 차츰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노래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됐어요.”
숨고 싶고 내보이기 싫었던 그는 그렇게 유명 강연자가 됐다. 자기 고백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는 안에 웅크린 때론 가슴 턱막히게 하는 상처들이 옅어지는 걸 느낀다. “저는 어머니가 여섯분이세요”란 부끄러운 가족사를 꺼내는 것도 이젠 아무렇지 않다.
그는 스스로를 ‘장애인의 1%’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것을 힘든 이들과 나누려 한다. 4년 전에는 희귀 난치병자를 돕기 위해 핸드바이크로 전국 1552㎞를 15박16일간 달리는 일을 했다. 오는 5월 올림픽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전액 어려운 이를 돕는 데 쓸 참이다. 최근에는 이런 그의 활동에 동참하는 몇몇 후원자가 생겼다. 이들과 함께 곧 나눔재단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가 존재감을 갖게 된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앞으로 우리 사회 희망의 메신저로, 나눔지기로 활동해나갈 생각입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