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1988년 주식시장…88올림픽 기대감에 최대호황기 코스피, 85년7월 130p→89년4월 1000p 돌파…670% 급등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지나가는 강아지도 주둥이에 10만원짜리 수표를 물고 다닌다더만 주식이 미쳐브렀어, 올라도 너무 올라브렀어.”(드라마 ‘응답하라 1988’ 16화 中, 성동일의 대사)
최근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인기에 힘입어 88년의 주식시장도 재조명 받고 있다.
현재 여의도 증권가에서 당시의 주식시장을 겪은 증권맨들은 드물지만, 부진한 증권업황에 ‘1988년의 전설’을 언급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500선을 맴돌던 주가지수가 1년 만에 900선으로 껑충 뛰어오른 당시 상황은 중국ㆍ중동발 악재로 답답한 박스피 흐름을 보이는 현재와 시장을 바라보는 기대감부터 달랐다.
지금은 ‘찬란한 지표’로 남은 당시의 주식시장을 들여다본다.
▶88년, 주식시장의 ‘양적 팽창’=88년은 서울 올림픽 개최 효과에 힘입어 연간 12%의 경제성장률을 맛본 시기다. 이 기간 주식시장도 호황기의 수혜를 입으며 몸집을 불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8년 상장된 종목수는 970개, 시가총액 규모만 64조5436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도 상장 종목수(603개)에 비해 61% 증가, 시가총액도 38조3715억원 늘어난 수치다.
최근(2015년 말 기준)과 비교하면 시가총액은 1202조원으로 큰 폭으로 차이가 나지만, 종목수는 997개로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기간 상장된 주식수는 전년도에 비해 65% 증가한 25억1138만주를 기록, 주주수도 175% 늘어난 854만명에 달했다.
주식시장의 양적 팽창을 뒷받침한 주요 업종은 금융업(36.3%)이었다. 이어 조립금속제품ㆍ기계 및 장비제조업(17.6%), 화학ㆍ석유ㆍ석탄ㆍ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제조업(11.7%)도 힘을 보탰다.
당시 시총 1위를 자랑한 대장주는 그해 ‘국민주 1호’로 상장한 포항제철(포스텍)이었다. 당시 포항제철의 시총은 3조4666억원으로, 평균 주가는 3만361원이었다.
시총 2위~6위는 모두 은행주의 몫이었다.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은 시총 1조6310억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제일은행(1조5970억원)과 서울신탁은행(1조5684억원), 한국상업은행(1조549억원), 조흥은행(1조549억원) 순이었다.
오늘날의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당시 시총(1조1061억원) 12위에 그쳤다. 88년 평균 주가는 3만2631원, 그해 최저ㆍ최고가는 각각 2만8300원, 3만8600원이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88년 당시 주요 증권사는 회원사 기준 25개 수준이었다.
현재 증권사는 57개사로, 현황은 영업점 1217곳, 임직원 수는 3만6096명이다. 지금까지 이름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증권사는 대신, 대우, 신영, 신한, 부국, 현대뿐이다.
▶코스피 1000포인트 시대의 ‘견인차’=현재의 코스피가 공식 발표(83년1월)된 이래 88년 전후는 코스피의 유례없는 성장기였다.
85년7월부터 89년4월까지 종합주가지수는 130포인트에서 1000포인트로 상승, 무려 670% 올랐다.
자본시장 육성방안이 발표된 85년6월 이후 서서히 상승세를 타던 코스피는 88년 서울 올림픽(9월)을 만나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연초 632.04로 시작한 코스피는 연말 907.20을 기록했다.
이 기간 ‘3저 현상’(저유가ㆍ저금리ㆍ저환율)과 함께 금융ㆍ건설ㆍ무역을 일컫는 ‘트로이카’ 주식의 뒷받침은 코스피의 강세를 부추겼다. 특히 금융주는 같은 기간 100배 상승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88년 코스피의 이 같은 성장세는 네 자리 주가지수 시대를 견인했다.
89년 3월20일 2시40분께 종합주가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8.87포인트 오른 1000.28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했다. 이는 80년 1월4일의 종합주가지수(100)와 비교, 9년3개월 만에 주식시세가 10배 오른 순간이다.
당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 무기연기’ 발표로 정국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됐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매수에 가담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증권가 관계자는 당시의 상황과 관련, “꿈의 주가로 불리던 1000포인트를 돌파한 날 증권사 객장에서는 환호성이 일었다”며 “지점별로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맥주를 들면서 기념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미처 숫자 ‘네 자리’를 넣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전광판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전해진다.
종합주가지수가 단말기에 1000.28을 찍은 순간, 전광판 숫자는 999.28에 머물러 있었다.
네자릿수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증권사들이 전광판 종합주가지수 난을 세 자리로 놔둔 데서 비롯된 일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객장에서는 “이런 것 정도는 미리 손질해놨어야 하는 거 아니냐”, “네자릿수 시대를 맞는 기쁨이 반감된다”는 등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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