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의 기다림이었다. 프로그램이 정규방송으로 출발했을 당시부터 소속사(SM엔터테인먼트)에서 출연 요청을 했다. “다나가 생전 그런 말을 안 했는데, ‘복면가왕’은 나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복면가왕’은 워낙에 대기자들이 많다. “평균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다나는 8개월을 기다렸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서 ‘심쿵주의 눈꽃여왕’이 복면을 벗자 탄성이 터졌다.
“복면을 벗을 때 바로 앞에 관객들이 앉아 있어요. 뒤돌기 전에 먼저 얼굴을 보게 되는데, 절 보고 너무 깜짝 놀라는 표정에 제가 더 놀랐어요.”
‘파리잡는 파리넬리’와 ‘눈꽃여왕’이 임재범 박정현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부르자, 연예인 판정단은 급기야 화를 냈다. 김현철은 “이 두 사람을 붙여놓으면 어떻게 하냐”고 프로그램 출연 이후 처음으로 제작진에게 언성을 높였다. 탈락자 선정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최고의 무대. 다나는 불과 다섯 표 차이로 아쉽게 탈락했다. 복면을 벗으며 부른 박정현의 ‘미아’는 네이버 TV캐스트에서 현재까지 59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출연자들의 노래 가운데 가장 높은 조회수다.
“욕 먹을 줄 알았는데…. 제 노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나봐요. 퍼포먼스 위주의 노래를 많이 했으니까요. 사실 매니저 오빠들도 기대를 안했어요.(웃음)”
‘복면가왕’ 방영 직후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준비에 한창인 다나를 만났다. 기대치도 않은 예상 외의 반응에 다나 역시 놀란 눈치였다. 방송 이후 카카오톡 메시지가 수백개가 들어왔다. “천상지희로 활동할 당시 리드보컬이었거든요. 그 당시 라이브가 잘 됐던 무대에서도 노래로 대중의 인정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그렇게 나오고 싶었다는데, 막상 프로그램 출연이 결정되자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가창력이 쟁쟁한 실력파 위주”의 무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미치도록 연습했어요. 곡 선정까지도 쉽지 않았어요. 어지간한 노래는 다 나왔잖아요.”
‘복면가왕’은 출연자와 제작진과 상의해 다음 라운드 진출을 대비해 몇 곡의 노래를 더 고른다. 무대에서 부를 많게는 세 곡을 선정하기 위해 다나는 무려 70곡이나 되는 노래를 녹음했다. 소속사 매니저들에게 먼저 보낸 뒤, 제작진과 상의해 결정한 곡이 박정현의 ‘미아’였다. 다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방송 이후 다나는 ‘재발견’ 됐고, 다나를 둘러싸고 있던 편견도 어김없이 확인됐다. “대형기획사 소속의 아이돌그룹 멤버, 잘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성장해 상품화한 가수”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가창력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를 선곡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덧 연예계 데뷔 16년차가 됐는데, 대중은 이제서야 다나의 다른 모습을 만났다. 지난 5년간 앨범 활동을 하지 않았고, TV 출연도 없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스타들이 쏟아져 나오는 연예계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으니, 존재감도 예전만 못했다. 일만 하며 달려나간 때도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시작한 연예계 생활은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캐스팅됐어요.” 그 때가 2000년 무렵이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7~8년씩 연습생 생활을 한 건 아니었어요. 계약한 이후 바로 앨범을 녹음했고, 그 때부터 쭉 이 곳 생활을 했어요. 연예인으로 살았던 시간이 참 길죠.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어요. 수학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요.”
노래를 했고, 연기도 했다. 예능 출연도 적지 않았다. 걸그룹 활동까지 이어졌다. “천상지희 활동 이후 20대 후반에 접어들며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위험하게 달리는 차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사춘기가 너무 늦게 찾아왔어요.“
연예인으로서의 삶에 큰 욕심이 없었다. 그 즈음 다나는 난데없이 “국제변호사를 꿈 꿨다”고 한다. 성장통을 겪었던 시절을 웃으며 떠올리는 모습엔 여전히 어린시절 다나의 순수한 얼굴이 남아있다. 천상지희의 해외 활동 덕에 일본어 능력시험인 JPLT 1급 자격증을 수월하게 취득하고, 일본에서 국제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야심찼던’ 그 꿈을 접은 건 뒤늦게 좋아하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앨범을 안 내도 괜찮을 뿐이지, 노래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노래를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싶었어요. 사춘기의 반항이 그렇게 끝났죠.”
뮤지컬 무대는 흔들렸던 다나에게 성장의 발판이 돼줬다. 한없이 지지해주는 팬들의 칭찬이 아닌 무대,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받는 곳이었다.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섰고, ‘뮤덕’이라 불리는 관객들은 그 무대를 냉혹하게 심사했다. “당혹스럽고 짜릿했어요. 무대와 관객의 진지한 자세가 숭고하게 느껴졌고, 어디에서도 가짜로 만들어낼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곳이기에 새벽 5시에 일어나 연습을 했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달라지는 객석의 반응에 감사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평가받고,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다나에겐 뮤지컬 무대도, ‘복면가왕’도 가수로서의 갈증을 해소한 자리가 됐다.
“요란하게 나를 드러내면서 활동하길 원하진 않아요. 꾸준히 노래하고 싶어요. 반짝 나왔다 사라지는 영광보단, 이렇게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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