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싱글앨범 ‘귀향’ 내놓은 인디밴드 ‘페인터스’

데뷔 1년도 안돼 벌써 3번째 앨범… 자꾸 곡 만드는 건 음악색깔 찾아가는 과정 “ ‘홍대씬’ 줄어만가는 현실 안타까워”

‘나는 공대생이다. 여태껏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 사람 앞에 서면 어지러운 공포증이 있다. 때가 돼 남들 다 가는 군대에 갔다. 누군가가 내 목소리가 좋다고 했다. 순진한 마음에 ‘이 사람이 날 좋아하나’ 싶어 움찔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내친김에 통기타를 배웠다. 제대하고 무얼할까 고민했다. 거리공연 한번 해볼까, 군대도 갔다 왔는데. 하얀 햇살 아래서 이승기의 ‘음악시간’을 불렀다. “학교에서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무시해/걸핏하면은 자습하라며 음악을 무시해.” 부르다 보니 신이 났다. 나한테 이런 면이? 또 거리에 나섰다. 나름 팬이 생겼다. 어느 날 열성팬이 나 몰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2’에 지원서를 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10위까지 올랐다. 나에게 또 한번 놀랐다. 음악을 해도 되겠구나 내 자신이 설득됐다. 스스로 뭔가 열심히 해본 게 처음인 것 같다.’

2013년 7월 미니앨범 ‘FIRST PAINTERS’로 데뷔한 4인조 남성밴드 ‘페인터스’ 박래원의 보컬리스트 입문기다. 원섭(32ㆍ드럼), 김영우(31ㆍ기타), 박래원(30ㆍ보컬), 최정민(25ㆍ베이스)으로 구성된 페인터스는 데뷔력이 1년도 안되지만 멤버의 이력은 만만치 않다. 정민을 제외하고 평균 10년이다. 저마다 다른 밴드활동을 하다 이런 저런 무대에서 만나 우연한 계기로 뭉쳤다. 베이스 정민은 구인광고를 내 합류했다. ‘페인터스’에는 얼떨결에 밴드에 빠진 공대생 출신이 한명 더 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영우는 학교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다 아예 그 길로 나섰다.

맏형 격인 원섭과 막내 정민은 중학교 때 각각 드럼과 베이스를 잡았다. 일찌감치 끼를 발견한 경우다. 서로 다른 성장과정과 개성의 차이에도 이들은 밴드가 주는 매력, 바로 하나되는 뜨거움에 매일 악기를 든다. 멤버들은 지난해 7월 올림픽공원 뮤즈라이브홀에서 가진 단독공연의 짜릿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저희에겐 첫 무대였고 우리들의 잔치였죠. 눈이 따가울 정도로 땀을 쏟고 현기증이 나게 뛰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러다 옆을 보는데 영우가 이상하게 머리를 흔들고, 래원이는 탬버린을 치고 타조처럼 뛰어나니는 거예요. 아, 얘네들도 나처럼 흥분하고 있구나. 그런 하나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원섭)

데뷔앨범 ‘퍼스트 페인터스’는 ‘1000SMIILES’ ‘SUIT UP’ ‘CAFE TERRACE’ ‘RUN TO THE LIGHT’ 등 네 곡으로 구성됐다. 하늘색의 발라드 사운드와 멜로디가 귀에 편한 곡으로 감정의 과잉이 없어 마냥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페인터스는 지난 3일 싱글앨범 ‘Lie’를 낸 뒤 30일 또 다른 싱글 ‘귀향’으로 돌아왔다. 앞의 곡 둘이 밝은 쪽이라면 ‘귀향’은 좀 서글픈 편이다. 김영우가 작사ㆍ작곡한 ‘귀향’은 서른살의 자화상을 그렸다.

“어렸을 때는 서른이 되면 뭐가 돼도 돼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른이 됐는데 여전히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고 씁쓸하더라고요.”

부푼 꿈을 안고 당당하게 집을 나왔던 그는 자취생활을 접고 다시 가방을 꾸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밴드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멤버들은 가슴 뿌듯하다. 밴드의 매력은 각각 자신의 악기로 표현하면서 어울림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밴드는 혼자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게 해주죠. 건물을 짓는다면 설계만으로 안되잖아요. 기둥을 세울 사람, 지붕을 얹을 사람이 필요하듯이, 보컬은 노래만 할 수 있지만 어울리면 달라지죠. 보컬이 기타옆으로 가서 에너지를 나눌 수도 있고 그렇게 하나되는 느낌이 좋아요, ”(래원)

세션맨으로 잠깐 활동한 적이 있는 정민은 “세션은 일정한 틀이 짜여있는 대로 하지만 밴드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멤버들의 꿈은 소박하다. 다른 일 안하고 밴드만 하면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그러나 밴드의 현실은 다르다. 설 수 있는 무대도 줄고 무엇보다 열심히 만든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다.

“클럽은 많아졌다고 하는데 정작 무대에 설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어요. 실제 체감은 달라요.”(영우)

“기획사가 없이 활동하는 밴드는 앨범을 냈을 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에요. 그나마 유튜브, 페이스북이 있는 게 다행이지만 그러다 보니 이슈만 만들어내 시선을 끌려는 데들도 생겨나는 거죠.”(원섭)

“예술인복지법이 생겨서 뮤지션들을 위한 지원이 있길래 지원서류를 보니까 엄청나게 까다롭더라고요. 증명을 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고 지쳐서 그만두고 말았어요.”(래원)

이들은 홍대가 상업화되면서 ‘홍대씬’이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댄스 클럽들은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데 반해 라이브 클럽은 줄어 뮤지션들은 점점 무대에 서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밴드를 찾아가서 라이브를 듣는 문화였는데 이제는 모두 스트리밍해 듣다 보니 클럽이 줄 수밖에 없죠. 큰 페스티벌은 늘었지만 밴드들이 매일 설 수 있는 소규모 공연은 크게 주는 거죠.”(원섭)

페인터스는 미정형의 밴드다. 지금까지는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틱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두진 않는다. “곡을 자꾸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우리에게 어울리는 색깔이 어떤 건지 알아지겠죠.”(정민)

페인터스는 그렇게 음악적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발짝씩 음악적 성취를 쌓아올리다 보면 거기에 이루고 싶었던 꿈이 만져질 것 같은 예감이다.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