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국회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경제ㆍ노동 관련 개정법안을 조속히 처리하라고 말입니다. 지난 23일에도 박 대통령은 핵심개혁과제점검회의에서 “만약 국회의 비협조로 노동개혁이 좌초된다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나 야당을 비판하면서 쟁점법안의 처리를 촉구한 발언을 살펴보니 거의 이틀에 한번 꼴입니다. 파리 및 중유럽 순방 후 귀국해 정무를 재개한 7일부터 24일까지 18일 동안 8일을 국회나 야당을 맹공하는 데 썼습니다. 박 대통령 자신의 심정은 감성적으로 표현하고, 쟁점법안을 붙들고 있는 국회를 향해선 무섭게 비수를 꽂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 경제 등 24개 핵심개혁과제를 “아주 소중한 자식같다”고 표현한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소중한 자식’을 내팽개치는 것은 패륜적인 범죄입니다. 그래서 국회나 야당을 향해선 “역사의 심판”을 들이댔습니다. “참담하고 통탄스럽고 답답하다”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국회와 야당에 대해선 “미래세대에게 죄짓지 말라”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잃어버린 시간,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공격했습니다. 법안처리가 지연될 경우 경제도 일자리도 다 죽는다는 취지로 “골든타임”이라고 했고,“죽기 전에 치료하고 빨리 살려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일의 경우 죽음에 대한 책임이 국회나 야당에 있다는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날 그날 발언은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의 보폭과 목소리톤도 결정합니다. 그때마다 여야 사이의 협상테이블은 요동칩니다. 청와대에서 여의도의 정치판을 흔드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격 조종’ 정치, ‘리모콘 정치’입니다.
청와대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야 지도부가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청와대의 의지는 강경합니다.
지난 23일과 24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와 여당을 향해 불만과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현재 계류 중인 쟁점 법안 말고도 이제까지 야당 협조로 통과된 경제 관련 법안이 얼마나 되는데 야당과 국회에게만 책임을 묻느냐, 경제 위기는 지금 정부의 실정 때문이지 야당 때문이냐, 여야가 합의를 위해서 노력 중인데 왜 청와대가 입법부에 월권하려 드느냐는 등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또 청와대의 지시대로 여당이 움직인다고 야당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협상이 될 리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보고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는 여당이 독자적인 정치력과 협상력을 발휘할 리 없습니다. 내분으로 가뜩이나 집안사정이 좋지 않은데 청와대까지 화를 돋구니 야당이 고분고분 협상 테이블에 앉을 리 없습니다.
지난 23일 쟁점법안인 기업활력제고법을 심사하기 위해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소위에서는 양당간 의견접근이 상당히 이뤄졌으나 정부의 거부로 결국 처리가 다시 난망하게 됐습니다. 야당이 기업활력제고법의 적용 대상에서 대기업을 제외해야 한다는 당초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나 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 등 산업 분야는 포함시키자는 안을 새롭게 제시해 양당간 합의가 이뤄지나 싶었던 것입니다. 여당에서도 긍정적인 어조로 정부와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그러나 결국 정부와 여당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입니다. 박근혜대통령은 노동개혁 등 쟁점법안 처리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청와대와 정부는 법안의 일괄처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에도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원내대표가 선거구 획정안과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마주앉았습니다만, 소득은 없었습니다.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고 나서 수차례 회동을 갖고 때로는 마라톤 협상까지 벌였지만 매번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쨋거나 협상은 다시 계속됩니다. 연휴 중에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27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야가 합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발언과 청와대의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구, 과연 법안 처리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날선 발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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