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절차거쳐 뇌사판정 생전 기증자는 극소수 불과 막연한 불안감…실천까진 용기필요
“장기기증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당장 산 채로 장기가 ‘적출’당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세요.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죠.”
연말연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물질적인 기부 외에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게 장기기증이었다. 비록 내 ‘육신’은 죽어 없어질지언정 누군가는 내 덕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선뜻 기증 서약을 하기엔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24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사랑의장기기증)에서 만난 김동엽 실장은 서약을 앞둔 기자가 평소 장기기증에 대해 갖고 있던 이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털어놓자 이런 ‘적출과 오해’에 대한 얘기부터 내놨다. 그 말을 듣자 ‘뇌사 판정이 잘못돼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기가 적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비단 기자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뇌사 판정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21조에 의거해 엄격한 절차를 밟는다. 뇌간반사가 완전히 소실되고 자발호흡이 유지되지 않는 등 완전한 뇌사상태라는 판정을 받아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같은 내용의 2차 조사를 거쳐야 한다.
신경외과 전문의, 변호사 등 4~6인으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 위원 가운데 단 한명이 반대 의사를 표해도 뇌사 판정은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뇌사 판정을 받아도 가족들의 합의가 없으면 뇌사자가 생전 기증 의지를 표했다 하더라도 기증은 불가능하다.
자기 몸을 희생해서 남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고귀한 작업에는 이렇듯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절차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절차를 거쳐 타인에게 새 생명을 안겨준 뇌사자는 한해 약 400명.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생전 장기기증에 서약한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김 실장은 “2013년 기준 기증자 400여명 가운데 생전 서약을 했던 분들은 1% 남짓한 5명 뿐이었다”면서 “대부분은 가족들이 힘든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전체 인구 대비 장기기증 희망자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장기기증 희망자는 143만6116명. 전체 인구의 약 2%에 불과했다. 올해 15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지만, 15년여에 걸친 누적 인원임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적은 숫자라는 평가다.
영국은 전체 인구의 31%, 미국은 48%가 장기기증에 서약했다. 수치로만 보면 약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욱이 연간 장기기증 희망자는 약 10만명.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며 각막을 기증한 사실이 전해졌던 지난 2009년 20만명을 기록한 이래 기증 희망자 수는 연간 10만명에서 일정기간 답보 상태다.
장기기증이라는 선행 역시 이슈가 생기면 반짝 유행처럼 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잊혀진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김 실장은 장기기증 서약이 저조한 이유와 관련해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 및 두려움과 더불어 제도적 아쉬움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실장은 “미국은 운전 면허 응시 원서에 장기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칸이 있고 영국은 기증을 희망하든 희망하지 않든 체크 자체를 하지 않으면 면허 발급이 제한될 정도로 제도화돼 있다”면서 “국내에 해마다 120만명이 운전면허를 발급받고 있는데 이 중 10%만이라도 서약을 하면 한해 등록자 10만명이 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아울러 그는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장기기증 교육과정을 넣어 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언하며 “제도가 개선되면 인식은 자연스레 따라갈 것”이라고 했다.
고민은 길었지만 서약서 작성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후 각막 기증’과 ‘뇌사시 모든 장기(각막, 신장, 간장, 심장, 폐장, 췌장 등) 기증’을 체크한 뒤 ‘Save9’라고 적힌 장기기증등록증을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장기가 적출되는 일은 없었다. 막연했던 불안함은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던 셈이다.
박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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