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한국 프로복싱은 극심한 흥행침체에 더해 4개의 기구의 난립 등 분열까지 겹치며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독점적인 기구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10개의 구단을 아우르며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프로야구와는 아주 대조적이죠. 태양이 8개의 행성을 거느리며 유기적 조화를 꾀하는 것처럼 프로스포츠에서도 커미션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 데 복싱인의 한 사람으로 정말 안타깝습니다. 1970, 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권투는 한 마디로 황금어장이었습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라는 촌평까지 나왔고, 실제로 한때 무려 6명의 세계챔피언을 거느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많던 ‘고기’가 한국 호랑이처럼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랭킹표을 보면 10위권 이내에 빈자리가 수두룩한 것은 물론이고, 챔피언까지 공석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구는 4개나 되니 개그콘서트를 보는 느낌마저 듭니다. 2012년 1월 한국권투위원회(KBC)는 서울의 중구 구민회관에서 KBC 전국 총회를 개최하여 만장일치로 홍수환 비대위원장을 제22대 신임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화려한 출범식이 치러졌고, 한국 프로복싱의 아이콘인 홍수환 회장은 의욕적인 취임사를 토했습니다. "나는 한국 권투 역사상 최초로 원정경기에서 세계챔피언이 되었고, 또한 처음으로 두 체급을 석권했다. 권투인으로 총대를 매는 일도 맨 처음이 되겠다.“
사상 처음으로 선수 출신 KBC 수장이 됐다는 상징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홍 회장은 감흥에 젖어 재임기간 중 3명의 세계챔피언을 만들겠다고 호언했습니다. 권투인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죠. 며칠후 대립각을 세우던 기존 집행부가 홍수환을 업무방해로 고소하고 회장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하면서 ‘한지붕 두 가족’의 난타전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홍수환은 회장직무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았고, 1심에서 패소하는 등 잦은 송사와 함께 분열은 가속화됐습니다. 그리고 2014년 1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홍수환 집행부는 끝내 패소했습니다. 비록 법정에서는 졌지만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전열을 추스릴 필요가 대두됐습니다. 당시 정선용 사무차장은 장철 총무부장에게 “우리가 비록 패소했지만 홍수환 회장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자. 우리가 다시 결속해서 뜻을 같이하는 관장들과 함께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한국 프로복싱을 부활시키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곧 실행에 옮겨 2014년 5월 14일 ‘전국 관장님들과의 공청회’ 때 새 집행부를 만드는 결의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홍수환은 자기를 회장으로 추대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던 비대위 위원들에게 굳건한 결속을 공언(公言)했지만 실제적인 행동은 후에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습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 말들만 쏟아냈던 것이었죠. 이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양심이 행방불명된 인간이라고. 의리에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고, 이익에 의해서 흔들리는 팔색조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홍수환 회장은 간다는 말도 없이 온다는 기약없이 대전에서 치열한 대립각을 세우던 현재의 KBC 회장으로 버젓이 취임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홍수환이 세계챔피언이 된 40주년인 2014년 7월 4일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렇습니다. 2년 동안 온갖 송사를 하면서 수하 직원들은 7개월반 동안 급여도 받지 못하면서 ‘투쟁’을 했습니다. 급기야 정선용 사무차장은 카드대출 1,000만 원을 받아 직원들 봉급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곳간에 돈은 마른지 오래고, 송사로 인한 업무스트레스가 가중된 까닭에 정 차장은 당뇨가 발생하고 잇몸이 주저앉으며 어금니가 순식간에 5개가 빠질 정도로 심신이 고달팠습니다. 급기야 쓰러져 순천향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홍수환은 권투인 최초의 회장이라는 달콤한 꿀맛을 탐미한 수장이었지, 그 수장 역할과 의무를 냉정하게 저버렸습니다. 사나이 세계에서 가장 슬픈 일은 믿었던 사람이 냉정하게 등을 돌릴 때입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생활고에 시달린 정 차장은 아파트마저 처분하고 다세대 주택으로 이전한 상태였습니다. 삼성체육관 허병훈 관장은 “정선용이야말로 난파 직전의 한국 권투라는 배를 두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의인”이라고 평했습니다.조금 더 정선용 차장 얘기를 하자면, 2년여 동안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자 급기야 아내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학생이던 딸은 겨울방학 내내 공장에 취직해 학비를 벌어야했죠. 가정적으로도 심각한 고충을 겪었습니다. 참고로 지명도가 높은 홍수환은 강의 요청이 밀려있을 정도로 높은 인기 덕에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복싱인 중에 한 명입니다. 성공은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가슴이 사막화된 인정머리 없는 사람입니다.이런 상태에서 홍수환 회장은 혁명동지(?)들과 상의 한 번 하지 않고 ‘갈길이 서로 달랐다’라는 듯이 젖과 꿀이 흐르는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홍수환은 모든 서류와 집기를 가지고 바람처럼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상대편의 여의도사무실로 출근한 것이죠. 홍수환이 떠난 안양 KBC 사무실에서 후배들은 주인이 자리에 없는 회장명패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가수 윤항기의 <나는 어떻하라고>라는 노래가사처럼 망연자실 그 자체였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할까요. 울고싶은 이 마음 눈물을 글썽이며 허공만 바라보네. 무슨 말을 할까요. 말없이 떠난 사람♬KBC 회장으로 급선회한 홍수환은 이후 회장직을 수행해왔습니다. 1년여가 흐른 얼마전 통합 명분을 내세우며 KBF 이인경 회장을 만났으나, 본인을 KBC로 이끌었던 사람들에 의해 비토를 당하자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국회의원만 철새가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김부자라는 가수의 <무정한 철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죠. ♪그리우면 왔다가 싫어지면 가버리는 당신의 이름은 무정한 철새. 진정코 내가 싫어 그러시나요. 이렇게 애타도록 그리움 주고 아아 가버릴 줄 몰랐어요. 당신은 철새♬
사람이란 모름지기 위급함에 처했을 때 사람의 본성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입니다. 호치민 평전이나 모택동 평전을 읽으면 지도자의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오죽했으면 호치민이라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읽으며 지도철학을 곤고히 했을까요?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써 행동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홍수환 KBC 회장 사퇴’ 보도를 접했을 때 배우 김수미 씨가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김수미 씨는 어느날 우울증에 걸렸고, 나쁜 일은 몰아서 찾아온다는 말처럼 마침 남편의 사업마저 실패했습니다. 동료 연예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등 신세를 지고 있을 때 어느날 김혜자 씨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김혜자는 김수미에게 통장을 건네면서 "너 왜 나한테는 이야기를 안 하니? 추접스럽게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 꺼내서 써. 그게 내 전 재산이야. 그 돈으로 그 다음 날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때 주던가"라고 했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김혜자 씨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명연기를 펼친 ‘세기의 요정’ 오드리 햅번을 연상시킵니다. 햅번이 빛나는 것은 외모 때문만이 아니죠. 유니세프(UN 아동기금)에 가입하여 아프리카 등 여러 오지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승 1패를 주고 받았던 유럽인(독일) 최초의 헤비급 세계챔피언인 막스 슈멜링과 갈색의 폭격기라 불리우며 세계타이틀 25차 방어에 성공한 미국의 조 루이스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둘은 은퇴 후 대조적인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합죠. 막스 슈멜링은 복싱으로 번 돈으로 코카콜라 프렌차이즈를 사들여 부를 늘렸죠. 이후 재단을 설립하고 노약자와 빈민 구제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특히 자신과 두 차례의 세기에 대결을 펼쳤던 조 루이스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말할 수 없는 허드렛일을 하는 것을 전해듣고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지속적으로 주었습니다. 특히 루이스가 1981년 사망하자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주기도 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복싱판 휴머니즘의 표상이었습니다.
홍수환이라는 복서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분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는 한국 복싱의 상징입니다. 당신 말 맞다나 최초의 원정경기 챔피언이자, 최초의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최초의 선수인 출신 KBC 회장이었죠. 수려한 외모에 논리정연한 화법, 세련된 제스처 등 홍수환은 1970년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홍수환 전 회장은 다음 달이면 우리나이로 67세입니다. 이제는 70을 목전에 둔 원로복싱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뭇잎에 비유하자면 낙엽이 질 때입니다. 이때는 마음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도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이라고 했습니다. 덧없는 인생이라 하겠지요. 이제 마음이 진공상태가 되면 진정 당신께서 한국 복싱을 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보일 것입니다. 최초의 원정경기 두 체급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경력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며, 최초의 경기인 출신 KBC 회장도 그 어떤 잘못에 면죄부가 되지도 않을 겁니다.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또 부와 명예 등 많은 혜택을 누릴수록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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