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노총각’ 최익성으로 대중 앞에 서다어느 날 방송쪽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는 뜬금없이 ‘<짝>이라는 프로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짝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하나도 몰랐기에 거절했다. 하지만 선배가 계속 권유 하길래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거절했다. 심지어 내가 나가는 편은 ‘노총각 노처녀’ 특집이었다.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네이버에 이름 치면 사진과 이름이 나오는 내가 비공인들 사이에 노총각 딱지를 붙이고 나간다는 것도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나 커플이 안 되거나 대차게 차인다면? 공중파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비참하겠나. 시간이 지나고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프로야구 선수 출신 최익성이 아닌 세상에 다시 태어난 최익성이잖아. 이젠 그냥 일반인신분으로 원하는 것을 하나 둘 이루어가고 있는 노총각인데 뭐가 부끄럽고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니가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지난 인생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는 거야. 껍데기를 벗지 못하면 난 성공할 수 없어. 그냥 40살 노총각 최익성이라고 생각하자. 프로그램에 나가서 확실히 깨닫자! 그리고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직접 보고 들어보자.’ 난 지금까지 내게 다가온 일들을 모두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덕에 탤런트가 되었고 RJ컴퍼니를 만들었다. 이번에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잃을 것도 있겠지만 분명히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보였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짝>에 나가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소득모든 걸 내려놓고 카메라 앞에 섰다. 있는 척, 잘난 척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다. 자기소개 때도 “지금은 무일푼이지만 2000억을 버는 게 목표다”라고 당당히 밝혔고 나의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말했다. 나와 다른 세상을 살아온 친구들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수시절 동료들과 함께 할 때와는 또다른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방송 마지막엔 한 여성분께 커플이 되고 싶다는 감사한 제안도 받았다. 아쉽지만 짝은 못됐다. 아니,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 할 것 같다. 난 성공한 40살이 아니라 성공을 향해가는 40살이었다. 난 리스크가 많은 사람이고 나와 함께 할 사람은 짝이 되는 순간부터 그 리스크를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게다가 40대는 20~30대보다 실패의 리스크가 더 크다. 물론 그런 부담을 함께 짊어지고 간다는 분이 나타난다면야 당연히 만날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런 것을 느끼기에 상당히 부족한 시간이다. 내가 짊어진 리스크를 그 분과 나눌 자신도 없었다. 짝은 못 얻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은퇴 후 4년 간 잠들어있던 ‘최익성’이란 존재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총각 노처녀’편이 방송되는 날 내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갔고, 오랜만에 내 사진이 걸린 기사도 떴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라는 이력이 이렇게 큰 파급력을 갖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다음 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은 정말 다양했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저니맨 최익성’, ‘외인구단에 나온 탤런트 최익성’, ‘책 두 권을 낸 RJ컴퍼니 최익성’ 그리고 ‘얼마 전 <짝>에 나온 ‘남자 4호’. [헤럴드스포츠=차원석 기자@Notimeover] * 최익성이름보다 ‘저니맨’이란 호칭으로 더 유명한 남자. 힘들고 외로웠던 저니맨 인생을 거름삼아 두 번째 인생을 ‘정면돌파’ 중이다. 현재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를 지내며 후진양성에 힘 쏟고 있다.
